김륭, <꽃 피는 눈사람>
김륭
눈사람이 집으로 갑니다
낮엔 햇빛 타고 밤엔 달빛 타고 왔던 길 돌아갑니다
눈사람과 신나게 놀던 바람이 훌쩍훌쩍 웁니다
우두커니 구경하던 나무들도 뚝뚝 눈물방울을 떨어뜨립니다
대문간에 묶인 강아지처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지만
눈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꽃을 데려와야 합니다
저만치 꽃 피는 봄이 온다고 동네 어른들은 난리법석이지만
나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눈사람이 엉엉 울면서 데려온 꽃들이 미워질까
밤새 콜록콜록 꾀병을 부립니다
⟪프라이펜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문학동네 2009)ᅠ
김륭은 이 책 머리말에 썼습니다.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잣대는 나이가 아니라 사랑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동심이란, 사랑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 사이, 혹은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한 마리 토끼 같은 것은 아닐까요. 사랑을 믿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의 목적어는 무엇일까요. 토끼를? 토끼로 비유된 동심을?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한 마리 토끼가 동심이라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은데, 그 토끼를 믿는 것이 어찌 또 사랑인가요. 이 글에서 김륭은 동심을 다시 ‘눈사람’에 빗대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동시=동심=사랑”+“눈사람=토끼”입니다. ⟪프라이펜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에서 이 ‘사랑’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는 시는 <짝꿍>과 <꽃 피는 눈사람> 두 편입니다. <짝꿍>이 수박 속이 빨간 이유에 대한 연애담적 상상이라면 <꽃 피는 눈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꽃과 눈사람의 비극적 연애담입니다. 김륭은 존재를 뒤바꿀 수 있는 것도 사랑, 사라지는(진) 아름다운 것을 기어이 붙잡아 있게 하려는(부재의 현전) 안간힘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사랑에 대한 김륭의 생각은 이후 시집에서도 반복 변주 변용됩니다. <꽃 피는 눈사람>의 경우,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문학동네 2012)의 <감기 몸살>(“놀이터 옆 화단에서 벌벌 떨던 어린 꽃나무가 나를 찾아 아파트로 들어왔나 봅니다. 너무 추워서 폴짝, 내 품속으로 뛰어들었나 봅니다. (…) 온몸 가득 열꽃이 피었습니다. 저만치 봄이 오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오나 봅니다.”), 그리고 《엄마의 법칙》(문학동네 2014)의 <지렁이는 우산을 쓰고>(“나는 지렁이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꽥꽥거리는 오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흙을 뚫고 나오지 못한 씨앗의 아픔을 전하기 위해 나는 지렁이가 구둣발 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가 대표적입니다. 꽃 피는 봄 너머의 겨울 눈사람을 바라보는 마음, 김륭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