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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Apr 19. 2020

시간과 타성에 관하여

<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2013)

To.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시간여행자들에게


시간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2013)


 인간은 모두 우주를 유영하는 시간여행자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현명하게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 있죠. 한편 시간의 흐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일까요? 우리는 항상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타성에 젖어버립니다. 시간과 행복과 마음가짐에 관한 철학이 인류와 함께 하는 걸 보니 제대로 된 시간의 쓰임법을 연구하는 건 인간의 영원한 과업인 것 같습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특성을 지닙니다. 시간여행자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수많은 후회를 일삼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어느새 상처도 무뎌지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죠. 오늘은 그럴 때마다 길라잡이가 되어줄 영화 <어바웃 타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간, 사랑, 인생에 관하여. 이하 이미지 출처 : 영화 <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2013)






"시간 여행으로 누군가 날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

All the time traveleing in the world can't make someone love you.


 <어바웃 타임>은 시간을 돌이키는 능력을 지닌 한 남자가 터득한 멋진 시간 여행법에 관한 작품입니다. 개봉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자꾸 꺼내보게 되는 이유는 저도 바보 같은 시간여행자인지라 시간 여행 매뉴얼을 잊어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죠. 이 편지를 읽게 될 모든 분들도 시간 여행 중 길을 잃었을 때 이 영화를 떠올리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에게서 집안 남자들에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팀'. 시간 여행을 위해서 특별한 장치는 필요 없습니다. 깜깜한 곳에 들어가 눈을 감고 돌아가고 싶은 때를 떠올리면 되죠. 영화는 시간 능력을 얻게 된 팀이 '메리'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인생을 배워나가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는 시간 여행의 재미 더하기 쓴맛 짠맛까지 모두 보여주기 때문이죠.


손쉽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무게를 잊어서는 안 된다.


 갓 스무 살이 됐을 무렵 <어바웃 타임>을 처음 봤습니다. 나한테도 저런 능력이 생긴다면 공부를 더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초반부터 팀과 메리의 서로를 향한 진실된 마음이 저를 작품 속으로 푹 파지게 했습니다.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완벽한 고백을 하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 여행을 떠나는 팀의 모습과 그런 팀에게 매 번 반하는 메리, 그리고 매일 아침 지하철 플랫폼에서 서로를 배웅해주는 달콤한 모습까지. <How long will I love you>가 울려 퍼지며 팀과 메리의 시간이 짙어져 가는 시퀀스는 언제 봐도 웃음이 스며 나옵니다.


둘의 사랑이 짙어졌음을 단 몇 장면으로 보여준다


 팀이 메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한 건 맞지만 메리의 마음을 열게 한 건 팀의 진심입니다. 마음이 통하지 않았다면 기회가 몇 천 번 있었어도 틀어지고 말았겠죠. 서툴지만 진실되게 서로에게 다가가고자 한 노력 덕분에 두 사람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맺어진 후에도 한 순간도 거짓 없이 서로를 대하고 지쳐 힘들 때면 기대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주는 모습이 마음속에 깊게 각인됐습니다.


지금까지도 영화 인생 최고의 커플로 자리 잡고 있는 팀과 메리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The truth is I never travel back at all.


 소소한 행복을 위해 시간 여행을 일삼는 팀의 모습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속 마코토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또, 마코토가 자신의 시간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팀에게도 시간 여행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할 터닝 포인트가 찾아옵니다. 순간순간의 달콤함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에 우선순위를 매겨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죠.


죽음, 상실, 선택의 등 인생의 어두운 면에 집중하는 후반부


 시간 여행의 잔인함을 깨닫지만 팀은 좌절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시간 여행의 진정한 쓰임새에 대해 고민합니다. 아버지, 동생, 딸. 모두 팀에게 포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시간 여행을 하면 셋 중 누군가를 영영 보지 못한다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팀이 깨달은 것은 시간 여행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팀이 진실된 마음으로 메리의 사랑을 얻었던 것처럼,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방법 역시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 스스로 밝은 변화를 맞이하길 인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팀이 시간 여행으로 이룰 수 있었던 건 환상적인 섹스나 잔소리 피하기 등 사소한 일뿐입니다. 평생의 반쪽을 얻은 것,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팀의 진심과 노력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간에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주어 진 걸까요? 영화 속 팀의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바라는 인생을 위해' 그 능력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와 같이 대단한 이유가 아닌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말이죠.

 

나는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다했다. 내가 종일토록 기쁨을 누렸다는 사실이 유별난 성공으로까지는 아니다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행복해진다는 것만을 하나의 의무로 삼는 인간 조건의 감동적인 완수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책세상, 1999, 21pp.


 위 인용처럼 원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팀도 수많은 시간 여행 끝에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시간 여행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요.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그저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시간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팀은 시간을 돌리는 능력 따위 잊어버리고 매일매일을 시간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과거를 되돌리는 게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지금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더 느끼고 더 즐기는 것이 우리 시간여행자들의 임무라고 깨우쳐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편지를 끝맺으며


 한 때 제 노트북 배경화면은 항상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작품이라서 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져 타성에 젖지 않기 위해 항상 이 영화 속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기 위해서 말이죠.


 <어바웃 타임>은 인생 영화 No.1으로 꼽을 만큼 저에게 소중한 작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어 지는 작품이랄까요? 편지 한 통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또다시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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