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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Jan 05. 2020

극적이진 않지만 현실이죠

<라라랜드> (다미엔 차젤레, 2016)

To. 현실에 좌절하는 이들을 위해


극적이진 않지만 현실이죠

시네마틱한 것을 꿈꾸는 이유


 우리는 왜 시네마틱한 것에 열광하는 걸까요? 영화는 우리네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담은 그릇이기에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담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화려한 영상미와 아무런 개연성 없는 스토리, 귀를 즐겁게 해주는 노랫소리로 현실 세계로부터 눈을 가리고 귀를 막습니다.


"극적이진 않지만 현실이죠"


 영화 <이브의 모든 것> (조셉 L 맨키위츠, 1950)에서 '극적이진 않지만 현실이죠'라고 말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미건조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드라마를 꿈꿉니다. 10년 이상 지속된 미국 대공황이 폭동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 현실 도피를 할 수 있는 창구, 영화가 우후죽순으로 개봉됐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즐기는 화려한 생활과 격정적인 감정 변화는 현실에서 쉬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두 시간 남짓한 일탈이지만 잠시 현실은 잊고 화려한 세상으로 눈을 돌리기에는 충분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또다시 현실을 마주해야 하지만 너무 힘이 들면 다시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리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Euphoria의 극치

<라라랜드> (다미엔 차젤레, 2016)


 영화 <라라랜드> 시네마틱함, 드라마틱함의 극치라고   있습니다. <라라랜드>의 모티프가 된 작품 중 하나인 <로슈포르의 숙녀들> (자끄 드미, 1968)의 감독은 영화의 제작 의도에 대해 '그저 즐기고 노래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 어떤 번뇌도, 복잡함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해안가 마을 로슈포르를 배경으로 청년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각자의 반쪽을 찾아 서로를 탐닉하죠. 원색적인 색감과 군무는 마치 솜사탕처럼 관객의 눈에 녹아듭니다.


<로슈포르의 숙녀들> (자끄 드미, 1968) 오프닝


프랑스 고전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오마주한 <라라랜드>의 오프닝


 <라라랜드> 열광받는 이유도 바로 euphoria(행복감) 극치에 있습니다. 등장인물은 그저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도구일 뿐 영화를 이끄는 것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과 춤, 그리고 노래입니다. 꿈과 환상의 도시를 뜻하는 LA LA LAND가 제목이 된 이유도 조금은 알겠네요.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자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의 애칭 '라라랜드'. 이런 곳에서 현실을 논한다니 조금 웃기게 들립니다. 그래서 감독은 필요 이상으로 환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연출을 통해 현실이 아닌 파라다이스를 그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배경은 겨울, 꽉 막힌 고속도로 위. '미아'와 '세바스찬'이 첫 만남을 갖는 곳이기도 하죠. 짜증 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갑자기 차문을 열고 나와 얇은 옷만 걸치고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리듬감 있는 편집과 안무, 강렬한 색감은 드라마틱함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줍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미아가 친구들과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으로 향하는 장면도, 미아와 세바스찬이 플라네타리움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장면도 바로 영화다운 요소들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씁쓰레한 상상이 주는 울림

<라라랜드>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


 그저 화려하기만  뮤지컬 영화로 마침표를 찍을뻔한 <라라랜드> 엔딩에서 고유의 색을 찾아갑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황홀경으로 관객을 이끌고 가더니 결국에는 현실로 끝을 맺은 덕분에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영화 <업>이 5분짜리 오프닝 시퀀스를 위해 존재한다면 <라라랜드>는 엔딩 시퀀스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마지막 장면이 남기고 간 뒷만은 길고 씁쓸합니다.


 아름다운 곳에 머무르더라도 그곳이 현실이 되면 그 맛은 옅어지기 마련입니다. 두 젊은 남녀가 사랑을 키워가던 도시 라라랜드의 불빛이 화려해질수록 그들의 인생은 꼬여만 가죠. 대배우로 성공하겠다던 미아의 꿈도, 재즈 바를 열어 연주를 하고 싶다는 세바스찬의 꿈도 대도시의 불빛 앞에서는 미약하게만 보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합니다. 겨울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로 돌아온 영화의 흐름은 꿈에 부풀어 있다가 다시 현실과 타협하는 주인공들의 감정 곡선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현실 앞에서도 주인공들은 계속 꿈을 꿉니다. 미아가 오디션장에서 이모의 이야기를 읊조리며 부르는 솔로곡 'Audition'은 계속해서 꿈과 좌절을 반복하는 본인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주고 있죠.


꿈꾸는 자들이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연약하고 상처 받기 쉽겠지만
꿈을 위해 살았노라


"Here's to the ones who dream."


 




'만약에 말이야...'

다 가질 수 없기에 애틋한 인생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희망을 놓지 않은 덕분에 미아와 세바스찬은 라라랜드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이뤘습니다. 성공을 거머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도 어딘가 슬픔이 서려있던 건 기분 탓이 아닐 겁니다. 배우로 성공한 미아는 어느 날 우연히 재즈 바에서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발견합니다. 서로를 마주 보는 찰나의 순간 억겁의 감정이 밀려오며 미아는 생각합니다.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그때 우리가 함께 꿈을 이뤘다면 어땠을까?'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미아는 what if 가정법으로 과거를 상상합니다. 그때 우리의 만남에 아무런 역경이 없었더라면, 서로의 꿈을 바로 이룰 수 있었다면, 함께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지만 그것은 다 허황된 꿈일 뿐입니다. 꿈을 이뤘지만 청춘의 한 페이지가 뜯긴 반쪽짜리 성공은 또다시 다른 꿈을 꾸게 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되돌아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한때 서로에게 바쳤던 마음은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미아와 세바스찬은 현실로 돌아옵니다.


 

 피아노 연주가 끝난 뒤, 다 가질 수 없었기에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눈빛에서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었습니다. 가게를 나서는 미아의 뒷모습과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연주를 시작하는 세바스찬의 모습이 슬퍼 보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극적이진 않지만 현실인 게 인생이니까요.






다시 드라마를 꿈꾸며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드라마를 꿈꾸듯이 우리도 특별한 사건을 꿈꿉니다. 그 꿈은 각자 다르겠지만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겁니다. 극적인 것 하나 없는 현실이지만 꿈을 꾸기에 버틸 수 있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나의 꿈이 허황된 것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드는 순간에도, 얼마나 더 노력해야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막막할 때도, 주위에서 내 꿈을 만류할 때도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짜증 나고 힘든 순간이 이 더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짓눌릴 바에야 꿈을 안고 때때로 오는 행복에 위안을 얻고 다시 나아가는 게 더 웃을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해피 엔딩을 위하여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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