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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Feb 23. 2020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메키스, 1994)

To. 내 앞에 놓인 운명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제가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랄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볼 때입니다. 격동의 세월을 버티는 이가 있는 한편,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해야만 하는 이도, 누구의 도움 없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제가 안고 있는 고민은 티끌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들 앞에 주어진 문제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습니다. 서로 다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걸어간다는 점입니다.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의 모습을 담은 <재키> (파블로 라라인, 2016). 가정의 평화가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지만 그저 담담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중년 여인의 모습을 좇는 <다가오는 것들> (미아-한센 러브, 2016).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인류 최초 달에 착륙하기 위한 한 남자의 고독한 도전을 담은 <퍼스트 맨> (데미언 셔젤, 2018). 여기 나열한 작품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각자의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조용한 도전을 응시합니다.


격동의 미국 근현대사와 주인공 '포레스트'의 일대기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펼쳐진다. 이하 이미지 출처 : 영화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메키스, 1994)


 무소의 뿔처럼 홀로 고요히 자기 앞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외도 견뎌낼 힘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건 무덤덤하게 운명을,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죠.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말하듯이 인생은 복불복 초콜릿 박스와도 같습니다. 형형색색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달콤한 크림이 들어있을지, 씁쓰레한 럼주가 들어있을지, 톡 쏘는 고추냉이가 들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아무런 경고 없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맛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으신가요?

 





"My mama always said,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영화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제메키스, 1994)



 미국 근현대를 살아온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포레스트 검프>. 이 작품 전체를 관철하는 주제를 고르라면 누구나 다음 명대사를 떠올릴 겁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장르가 드라마인지, 전쟁인지, 코미디인지, 역사물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즉, 포레스트의 인생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적 사건이 교차된 씁쓸 달콤 짜릿한 초콜릿 박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모자란 지능, 불편한 다리, 전쟁, 전후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겪어야만 하는 만남과 이별... 충격에 대한 탄력 회복성이 낮은 저는 포레스트가 겪어야 했던 사건들 중  그 어떤 하나도 제대로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서 일까요? 사소한 불운에도 금세 좌절하며 누군가 끄집어내 주기 전 까지는 혼자만의 방에 박혀 숨어 지내기에 급급합니다. 할머니는 언젠가 힘들어 울고 있는 제게 '우리 손녀는 언제쯤 평온해질 수 있을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썩 나쁘지만은 않은 초콜릿 상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꽝이 계속해서 나올 때는 저도 모르게 풀이 죽어버립니다.


 풀이 죽어버리는 건 제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때문입니다. 세 시간 넘게 서서 통근하는 탓에 무릎이 아작나야만 하는 사소한 운명에서부터 여기서 말할 수 없지만 짊어지고 가야 할 큰 운명까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을까요?

 





"Run Forrest, run!"

 '아모르 파티 Amor fati'-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니체가 말하는 '피치 못할 일'이란 우리 손으로 결정할 수 없는 '운명'을 뜻합니다. 그리고 운명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버티는 경지를 넘어 즐기라고 하죠. 제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존버'만이 삶을 사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존버는 상처를 곪게 만들어 나를 죽이는 삶의 태도 중 하나입니다.


 편지 초두에서 말한 주인공들이나 포레스트는 삶을 버티지 않습니다. 운명을 살아가려고 할 뿐이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진 않더라도 그들은 그저 주어진 운명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수행합니다. 포레스트에게 있어 그 도구는 달리기였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많은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불평하거나 어떠한 판단을 내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며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집중하죠.



 피치 못할 전쟁, 이별, 신체적 조건... 이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달리는 포레스트의 태도였습니다. 어떠한 혼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뚝딱뚝딱 과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포레스트를 응원하고 우리의 태도를 되짚어보게 만들어줍니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사, "Run Forrest, run!". 어릴 때는 그저 웃기게만 들렸던 대사이지만, 포레스트처럼 용기 있게 운명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던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외침이자 포레스트가 주도적으로 운명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게 해 준 중요한 대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말을 듣고 또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고 달리는 우직한 포레스트의 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개봉한 지 30년 가까이 된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작품에 담긴 응원의 메시지 때문이 아닐까요? 인생은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르는 복불복 초콜릿 상자와도 같지만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주제를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포레스트의 모습을 빌려 말하는데, 그 어떤 이가 미소를 띠지 않지 않겠습니까. 하루의 시작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토일 어떤 맛의 초콜릿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 말고 이 영화를 보며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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