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타는 내향인의 연애란

시급 인생 22화-연애에 대하여

by 가람

후후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시급 인생러들은 어디서 위안을 얻을까요? 바로 ‘연애’입니다. 얼마 전 친구와 와인 한 보틀 까며 깨달은 건 내향인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전자에 속해 언제나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해 상대방을 갈구합니다. 주제에 눈은 높아 제가 소개팅용 레퍼런스로 만들어 둔 핀터레스트 폴더를 본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답니다.


핀터레스트 속 오아시스 '후후' 폴더


스물 다섯 이후에 저를 처음 만난 많은 이들은 (요즘 세대답게 MBTI로 구별하자면) 저를 찐 외향인, E로 알고 있지만 제 본질은 혼자만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내향인, I 성향에 수렴합니다. 외출을 자주 하고 사람들과의 모임 속에서 대화를 주도하지만, 그 후에 전 남들과 보낸 시간만큼 저 혼자 에너지를 비축하는 쿨타임이 필요하답니다. 잠시 동안은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얻은 에너지로 외로움도 달래고, 글도 쓰곤 합니다. 하지만 쿨타임이 찬 후로는 또다시 심심함에 못 이겨 누군가를 찾아 나섭니다.


가족 외 사회적 집단에서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가 너무나도 강해 그게 외로움으로 표출되나 봅니다. 남들은 어쩜 그렇게 쉬지도 않고 이직을 하고 연애 상대를 찾아 나서냐고 의아해하지만 ‘나 자신’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 용기가 부족해서 나를 인정해줄 직장이나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존재일 뿐입니다.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지만 레퍼런스 폴더를 다시 훑어보니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만나고 다닐 정도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또 아닌 거 같습니다. 같이 와인 까던 친구는 제 손을 꼭 잡으며 ‘가람아, 제발 얼굴 말고 조건도 보자’고 애원을 했는데… 글쎄요, 일단 얼굴이 마음에 들어야 진도를 빼든 마음을 주든 할 거 아닙니까. 그래요, 저 얼빠 맞습니다. 너무 자명한 사실이라 욕먹더라도 할 말이 없네요.


그녀들은 왜 없는 걸까? 22. OCT. 21






우리 그냥 결혼하면 안 될까?

돈은 내가 열심히 벌 테니까


얼빠인 저뿐만 아니라 다른 시급 인생러들에게도 연애란 쉬운 게 아닙니다. 드라마에는 일 잘하는 여성 캐릭터를 따라다니는 순두부 같은 연하남들이 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매일 사무실에서 가 족 같은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내 반쪽은 어디 있을까?’란 생각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죠. 그래서 소개 좀 받으려고 하면 이거 참 한숨만 나옵니다. 어째서 항상 소개받으려는 여자만 많고 남자는 없는 건지, 여초 회사 다니는 입장에서 참으로 억울합니다.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내가 맘에 안 들고, 가끔은 사진도 안 보내고 소개팅 당일 날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회사도 탕비실이 있는데 말이죠.. 출처: tvN drama 유튜브 캡쳐


우여곡절 끝에 맘에 드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면 이 또한 산 넘어 산입니다. 야근을 종용하는 회사에서 평일 날 데이트 약속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며 주말에 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주 5일간 쌓인 피로가 채 풀리지도 않은 채 데이트에 나가 주 6일 근무하는 듯한 피로가 축적되기 때문이죠. 몸만 힘들면 그만이지, 데이트 한 번 하면 평균 5만 원에서 10만 원은 훌쩍 날아가버립니다. 이십 대 후반 정도 되면 데이트 비용 정도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는 으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스물 N살의 저와 제 X들은 항상 돈에 쪼들렸습니다.


수필가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우북스 대표로 활동 중인 마츠우라 야타로 (松浦弥太郎)는 저서에서 소비에 관해 이렇게 서술합니다.


마지막으로 돈의 사용에 실패를 줄이는 중요한 규칙 또는 요령이 있다. 돈을 쓸 때 이렇게 스스로 묻는 것이다. “이렇게 사용하면 돈이 기뻐해줄까?” (중략) “가격 때문에 망설인다면, 그렇게 쓰여서 돈이 기뻐해준다고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사고 있어. 만약 가격 이외의 고민이 들고, 사용법에 돈이 슬퍼할 것 같다면 절대로 사지 않아.”

<안녕은 작은 목소리로> 마츠우라 야타로 저/신혜정 역, 북노마드, 116-117pp.


분명 서로 죽고 못살아 시작한 연애일 텐데, 어떤 계기 때문인진 불분명하지만 상대에게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전 연애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데이트를 하는데 그 시간과 돈이 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자기혐오에 빠진 적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시급 인생러들은 1. 만남의 기회가 척박해서 2. 일하기 바빠서 3. 먹고살기 바빠서 등 여러 이유로 연애를 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2030 세대들이 연애를 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하자니 귀찮은, 필수 아닌 선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 다룬 적 있지만 돈과 시간에 쪼들려 연애도 포기하게 되는 게 N포 세대들의 슬픈 현실입니다.






쿨타임이 필요해


이십 대 후반쯤 되면 연애의 의미를 갈구합니다. 누군가에겐 안정, 누군가에겐 현실도피, 누군가에겐 결혼을 위한 스텝이 그 의미겠죠. 연애의 맛을 이미 아는 시점에서, 그리고 앞서 소개한 이유로 이미 지친 상황에서, 굳이 연애에서까지 리스크를 감수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연애는 세상 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피난처이지, 다시 거기서 노력을 해야 한다면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든 게 불안한 우리네 인생, 익숙한 내 편 하나쯤 만들어 두고 싶다는 생각에 나를 상처 주는, 혹은 상처 주었던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혹은 한 발짝 물러나서 보니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미화된 기억을 안고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번 누군가의 손을 놓았다는 건 본인이 그만큼 상처를 받았고 지쳤다는 뜻인데 정작 본인은 그걸 잘 깨닫지 못합니다.


친구와 와인 한 병 까던 날로 다시 돌아와, 집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소개팅 어플을 켠 순간, ‘제발 조건도 보고 연애하자’는 그 친구의 말과 ‘남자 얼굴 3개월이면 끝이야’라는 아빠의 말이 떠올라 화면을 몇 번 넘기다 말고 창 밖이나 봅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인데 사람 때문에 지치고 상처를 받았으면 빨리 극복할 생각도 좋지만 일단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라고 합니다. 꽃이 있는 예쁜 카페나 영감을 주는 장소로 말이죠. 여러가지 일이 겹친 마당에 모두 끊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라 믿고 혼자 걷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단풍을 보면 기부니조크든요 03. NOV.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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