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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May 25. 2019

끝은 직감했을 때 가장 아프다

<졸업> (허지예, 2018)

To. 끝과 시작의 문턱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식어가는 불꽃을 지켜볼 때의 허무함


 실은 얼마 전 한 사람과의 관계를 졸업했습니다.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이후의 시간은 매우 아팠고 더디게 흘러갔기에 깔끔하게 ‘끝’이라고 결정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더군요.


 마음이 더 아팠던 건,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혼자만 전전긍긍했던 저번 날의 관계가 오버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들은 파편처럼 저를 괴롭혀 잊으려고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을 막을 도리는 없더군요. 그때의 저는 일본 모 대학의 졸업반이었고, 지금과 똑같이 취업, 주거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관계의 끝을 맞이하였습니다. 한 살 반 더 어렸다는 사실을 빼면 지금과 똑같네요.


 대학 졸업반 때의 힘들었던 기억과 지금의 견딜 수 없는 기분을 잊기 위해 밀린 잡지를 펼쳐보았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독립 영화 반짝반짝 전의 포스터가 실려 있었고, 검색해보니 당장 볼 수 있는 영화는 허지예 감독의 <졸업>이란 작품이더군요. 뭐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다 있나 싶었지만 사람과 졸업한 뒤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 옛 기억을 잊고 나아가기 위해 영화관을 찾아갔습니다.






“나 이거 하다가, 돈도 못 벌고, 배도 고프고, 월세도 못 내고…… 그러면 어떡해?”

<졸업> (허지예, 2018)


웃고 있지만 마냥 해맑게 웃을 수는 없는 순간. 이하 이미지 출처 : 영화 <졸업> (허지예, 2018)


 주인공 ‘해랑’은 영화 미술을 전공 중인 졸업반 학생입니다. 아직 경력도, 제대로 된 스펙도, 돈도 없는 해랑에게 자꾸만 끝을 암시하는 상황들이 반복됩니다. 영화의 시작은 해랑과 친구들이 졸업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한껏 꾸미고 카메라 앞에 서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니 몇 달 뒤에나 있을 졸업이 코 앞으로 다가온 것 같은 기분이죠. 술자리에서도 대화의 주제는 ‘넌 졸업하면 뭐 먹고살거니?’입니다. 다들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속마음은 불안하고, 자기 갈 길 확실히 정한 친구 보면 조바심이 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그때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엎친 데 덮친 격 상황은 더 꼬입니다. 해랑의 엄마는 권고사직을 당하기 전에 자진 퇴사를 하고 해랑과 단 둘이 사는 집을 처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에게 너도 이제 졸업반이니 혼자 독립해서 살라고 합니다. 자기 진로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독립을 해야 한다니. 당황한 해랑은 엄마와 싸우고 홀로서기를 결심합니다. 가진 건 몸 밖에 없기 때문에 알바를 뛰고, 선배 일을 도와주고, 수업도 듣고, 친구와 집도 알아보러 다닙니다. 미술 하는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힘들고 배고픈 일인지는 알았지만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 더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청춘의 패기로 죽기 직전까지 노력하는 해랑과는 반대로,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부모님이 해주신 집에서 살며 대학 졸업반을 보낸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자네는 예술이 하고 싶은 건가, 취업이 하고 싶은 건가?"



 영화 중반, 해랑이 교수님과 취업 면담을 하는 장면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정확한 대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뉘앙스는 이랬습니다.)


-"자네는 예술이 하고 싶은 건가, 취업이 하고 싶은 건가?"


 해랑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예술을 택한 케이스입니다. 해랑이는 영화 미술 감독이 되겠다는 꿈이 있고, 저는 일반 사무직보다는 좀 더 도전적인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취업을 한다면 광고 업계에 들어가 기획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 주머니 사정이 좋을 때 얘기죠. 향초 하나 켜 놓고 글을 쓰기 위해서, 글감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장 돈이 필요합니다.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졸업 후에 일본 간사이 공항 운항 관리 부서에서 일을 했습니다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에 찌들어 예술을 하기란 어렵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한국 본가로 돌아오면 금전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니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은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니 벌어놓은 돈은 바닥이 날 지경이고, 6월이 지나면 꽉 찬 25세가 된다는 사실에 슬펐고, 하나둘씩 돈을 벌기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니 더 조급해졌습니다. 4월 초부터 취업 활동을 다시 시작했지만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더군요. 취업을 해야겠다는 강박에 글을 쓰고 영화를 보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장 좋아하고 청춘을 쏟아부었던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의 공허함이란


 어쩌면 제 마음이 소란스럽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관계 유지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상황이 나쁜 게 아니라 상황이 나빴기 때문에 은연중에 어두운 모습이 많이 드러나서 관계가 끝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해랑은 저 보다 어리고 용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비록 라면만 먹기 싫다고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해 SOS를 요청할지언정, 사회의 쓴 맛도 맛보고, 돈도 벌어 자기만의 방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끝과 시작의 사이에서 느끼는 불안에 맞서 싸울 깡과 실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모두 제 나이 또래 분들이었습니다. 옆에 앉으셨던 여자분께서는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불이 켜지자 다들 무언가 고민이 있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좋은 기억을 잊으려고 본 영화였지만 영화가 끝나니 오히려 그때 기억이 더 나고, 나 보다 열심히 사는 주인공의 모습에 수치심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비행기 모드를 풀어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대학 졸업반 학생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20대 중후반 때 느끼는 불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았던 이들에게서 학생 신분을 빼앗고, 학교라는 소속을 지워버리면 남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습니다. 막상 닥치면 그럭저럭 살아 갈만 하지만 그전에 느끼는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발가벗은 채로 사회에 내던져질 것이라는 불안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는 끝과 시작, 그 모호한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해랑이 학사모를 쓰고 졸업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으며, 취업을 했는지 예술가의 길을 걷는지, 친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지, 어떤 거 하나 확실하게 끝맺음을 하지 않은 채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대신 가장 위태로울 때인 졸업반 1학기의 이야기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더 찜찜하고 답답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매콤 오돌뼈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속에 있던 고민을 털어놓으니 좋긴 했습니다만 영화 초반, 해랑이 졸업 사진을 찍은 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느꼈을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언제까지 이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아웃사이더의 불안함을 느껴야 하나, 한탄을 하는 대신 해랑이처럼 더 움직이고 더 부딪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끝과 시작 사이에 빠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 동기부여가 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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