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실패
크지 않은 욕심이었으나 그게 만만한 게 아닌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불과 12개월. 처음 3~4개월은 그런대로 가게를 인수하기 전 수준으로 단골손님들이 유지되었다. 3개월째부터 약간 손님이 줄어든다고 느꼈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러하였으나, 그렇다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삶의 모든 궤적이 이제야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하루하루 구체적이고 강력하게 경험하고 있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농사일은 일 년에 딱 한번 구체적인 성과가 손에 쥐어진다. 딱 한 번의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농부는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기계처럼 일 년 내내 땀과 노동을 갈아 넣고, 성과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절대적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을 추곡수매를 전후로 모든 수확의 크기는 한 번에 결정된다.
선술집에서는 하루 단위로 결과가 확인되었다. 이것은 절대적인 차이였다. 아이가 등교하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제일 먼저 은행으로 향했다. 최종적인 손실은 나중에 가려지겠지만 어쨌든 매일매일 일정 금액을 은행계좌에 입금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루의 땀방울이 하루의 매출로 꼬박꼬박 바뀌어 쌓이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일종의 쾌감이기도 하였다. 은행(정확히 국민은행 사당동 지점)이라는 장소 그 자체도 그녀에겐 본격적인 도시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경험의 공간이었다. 반듯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잘 정렬된 창구 안에서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시골 어디를 가서 이런 풍경을 구경할 수 있을까? 은행을 방문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는 평일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였다. 붐비지 않아, 공기도 깨끗하고, 모든 것이 손을 대지 않은 느낌으로, 이제 막 몰려올 손님들을 잘 맞이하겠다 듯이 정렬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방문하면 유니폼을 잘 차려입은 은행 직원이 비교적 더 공손히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유니폼이 인사를 할 때 그녀도 따라서 가볍게 구부려 맞인사를 했다. 새로운 삶이란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관계로 만나는 것임을,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국/민/은/행 사/당/동 지/점'을 매일매일 방문하면서 실체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3개월이 좀 지나는 시점부터 은행에 입금하는 금액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그녀는 혼자 인지하고 혼자 감내하기 시작했다. 12시까지는 대부분의 테이블이 손님들로 채워지던 것이, 한 두 군데 빈 테이블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계절적인, 일시적인 문제인지 혹은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판단하기에 부부는 경험이 부족했고, 장사에 서툴렀다. 그녀가 은행에 입금하는 금액은 12시 이후 비어 가는 테이블의 숫자만큼, 얼마 더 지나자 10시 이후 비어 가는 테이블의 숫자만큼 정확히 줄고 있었다. 그녀는 영문을 몰라 초조했다.
비어 가는 테이블이 늘 때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빈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청소했다. 농사일을 하던 중에 이런 상황에 닥쳤다면 뭔가 다른 궁리를 댈 수 있었을 것이나, 경험이 부족했고, 재주도 부족한 그녀가 할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이렇게 결과가 빨리 확인되는 일인 경우에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도 빨라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 아니었다.
9월 어느 날, 이른 가을비가 내리던 날, 이른 저녁임에도 테이블은 모두 비어 있었다. 가게 밖으로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비를 피해 우왕좌왕할 뿐 그녀의 가게로 찾아들어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날이 점점 더 어둑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거리가 비어 가는 것을 그녀는 비어있는 테이블 너머로 바라보았다. 가게 문 바로 밖으로 낮은 입간판이 비에 젖어 있고, 주위의 풍경도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8시가 넘어서자 지나치는 사람들도 자취를 감췄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속에서 우산 파는 목소리, 도로에 남겨진 빗물을 차고 나가는 차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상황이 명백해졌다. 가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기울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가게에 사람들은 들어차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자 가게 안의 손님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가게 장사를 처음 해보는 부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지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자신들이 할 일에만 집중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재료를 더 잘 다듬고, 가게 안을 더 깨끗이 닦고, 좀 더 친절하고 빠르게 움직이고자 했으나, 시골에서 갓 올라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는 서툰 시골 부부의 초조함은 얼굴에서 드러났다. 11개월 개월이 지나던 즈음, 가게는 초저녁 뜨내기 손님을 제외하면 그동안 가게를 먹여 살린 정기적인 손님의 발길은 거의 끊어졌고, 가게세를 내고 나면 두 사람 인건비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잘되던 가게가 이런 상태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12개월이 지날때(보증금이 가게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을 때) 부부는 가게 문을 닫았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은 사그라졌다.
부부가 전수받은 재료 다듬기, 데치기, 장 만들기, 튀기기 등은 어쩌면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일 뿐, 시장에서 딱히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수준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단골손님이건 새로운 손님이건, 손님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뭔가를 계속 바꿔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하고 필요한 것은 꼭 유지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가게 주인이 바뀌면 사람들은 뭔가 새롭고 특별한 메뉴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 기대가 깨졌을 때 사람들은 간단히 실망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같은 메뉴를 같은 품질로 유지하면 손님은 유지될 것이라고 부부는 쉽게 그렇게 생각했다. 시골에서 자기 땅만 일궈온 농사꾼 부부는 이전 사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편안함과 친밀함을 주고 있었는지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장이 가게를 넘겨준 이유가, 사거리 모퉁이에 새로운 가게 두 개가 오픈할 거라는 걸 알고 취한 조치였다는 걸, 사장 스스로도 좀 더 터를 넓혀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오픈한다는 것도, 손님들한테는 알음알음으로 그곳을 알려주었다는 것도, 이 부부는 몰랐을 것이다.
젊은 부부는 세 번째로 크게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이 치명적이었던 건,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교육비를 포함하여 생활비가 솔찮이 들어가야 할 시점에서 이런 실패가 닥쳤다는 점이다. 평생 땅과 부딪혀 살아온 부부는 이 실패를 딛고 일어설 방도를 딱히 찾지 못하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실패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보다는 주저앉은 채, 일어설 한 톨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는, 아득한 절망 같은 것이었다. 더 이상은 이곳에서 버텨, 살아낼 자신이 없어졌다. 이곳이 자신과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절망에 가까운 깨달음이었다.
시골을 떠난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목표는 마침내 완전하게 꺾였다. 시집을 온 순간부터,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것을 양오빠 가족에게 뺏긴 순간부터, 자신이 스스로 힘을 내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한눈 팔지않고 앞만 보고 살아왔던 그녀였기 때문에, 이 실패는 가슴속 깊은 언저리에 눅진한 패배감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는 평생 우울증으로 표출되었다. 남편은 듬직하기보단 기분에 좌우되는 편이어서 가끔 술을 먹으면 실패를 그녀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답답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내기도 하였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그녀는 아이를 언니 집에 맡겨두고 시골로 내려왔다. 다시 시골로 내려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남편은 먼저 시골로 내려간 터라, 그녀 홀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일부러 제일 늦게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내려가는 길 내내 아무것도 먹질 못했고, 마음은 처연스러울 정도로 가라앉아 어디까지 슬픈 것인지 어디까지 절망인 것인지, 어디까지 망설임이고 어디까지 후회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모든 것이 합쳐진 채로 가슴은 깊이 내려앉았다.
내려오기 전날 밤, 그녀는 아끼고 아낀 전세 보증금을 언니 손에 쥐어 주었다. 아이에 관한 한 그녀나 그녀의 언니나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언니도 이 돈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두었다.
아이만큼은 여기 남아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아이마저 데리고 내려가는 것은 그야말로 지난 모든 시간을 공허한 실패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
그래도 아이는 누/구/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이 무너지면 그녀가 무너진다는 것.
아이는 이 모든 실패를 부정할 수 있고, 결국 모든 시간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으로 남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