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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amoi Oct 01. 2021

소년. 그녀를 보는 또 다른 창 4

첫 외식의 기억

소년은 5학년 가을 즈음의 엄마아빠의 모습을 뚜렷이 기억한다. 엄마아빠는 큰 맘을 먹고 조그만 가게를 인수해서 밤낮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일하셨다. 두 사람은 새로 시작한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희망은 부풀어 올랐고 하루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었지만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시골집이 아닌 곳에서, 소년의 가족은 비로소 한 가족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없이 우리끼리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어렴풋한 깨달음이 ‘이게 우리 가족인 건가?’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부부는 소년이 잠 들고나서 한참 지난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  새벽에 들어온 엄마아빠는 그날 벌어들인 매출을 정리하고 잠이 들었다. 소년은 잠결에 가끔 부부가 작은 소리로 웃는 소리를 들었다고 느낀다. 소년은 엄마아빠가 그렇게 많이 얘기하는 것을 생전 처음 봤다. 엄마는 서너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했다. 아빠가 9시경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마치면 부부는 그날 할 일을 상의하고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소년의 서울생활 중 처음으로 엄마아빠가 집에서 소년을 맞아주었다. 예전 어렸을 때 엄마가 가끔 소년의 가방을 받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엄마가 소년의 가방을 받아주는 모습을 아빠가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이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읽고 있던 신문을 다시 펼치셨다. 아빠가 신문을 보는 모습은 소년에게 낯설지 않았다. 시골집에는 군에서 마을 이장한테 제공하는 농민신문, 조선일보와 대전일보가 배달되었고 아빠는 시골터에 묶인 삶의 갈증을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해소하듯 가능한 한 꼼꼼히 모든 신문을 읽어내려갔다. 


특히 시골일이 좀 한가해지는 겨울날, 따듯한 온돌방에서 아빠는 신문을 읽고 소년은 그 옆에 엎드려서 교과서나 다른 책을 읽는 것은, 시골에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이제 서울에서도 가/능/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소년은 신문을 보는 아빠 옆에서 엎드려서 그날 도착한 학습지를 천천히 풀어갔다. 엄마는 깎은 과일을 담뿍 담은 접시를 내어 오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동네 친구들이 요란스럽게 소년을 불러냈지만, 소년은 그날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고 소년의 엄마가 아이들을 달래 돌려보냈다. 학습지를 다 마친 소년은 괜스레 아빠 옆에서 빈둥빈둥거렸다. 아빠는 시골에 있을 때처럼, 아이에게 신문 읽는 법을 알려주었고, 소년은 아빠가 알려준 대로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을 따라 읽어 내려갔다. 가끔 나오는 한자는 아빠가 대신 읽어주었다. 소년은 신문 읽는 것이 교과서를 읽는 것보다 흥미로웠다. 소년이 세로로 쓰인 신문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을 엄마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사당동 뒷산으로 하루 해가 간신히 걸쳤을 때, 엄마아빠는 소년을 데리고 외식을 위해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서 저녁을 먹을 거라는 엄마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잠깐 헷갈렸지만, ‘그럼 짜장면 먹으러 나가는 거야?’라며 소년은 기운이 가득 찬 다람쥐처럼 튀어 오르듯 맨 앞장서서 집을 나섰다. 


소년은 집을 나서면서 저 앞으로 뛰어나가다 다시 돌아와 엄마아빠 주위를 맴돌다 다시 뛰어나가기를 반복했다. 길목을 빠져나가기 전에 누군가 자기와 자기 가족을 봐주었으면 했다. ‘우리 집 지금 외식 나가는 중’..이라고 그냥 얘기하고 싶었다. 경사진 골목길 계단을 내려서자 시장통으로 이어지는 제법 큰 길이 열렸다. 소년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고 아빠는 한 발짝 앞서서 걸었다. 따로 걷는 듯했지만 세 사람은 적절히 동/행/하고 있었다. 그 길은 등하교를 위해 매일 걷는 길이었는데,  흡사 다른 길을 걷는 느낌을 갖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혼자 걸으면서 보던 사람들, 가게들, 물건들, 나무들, 간판들, 그 모든 것들이 엄마아빠와 같이 보면서 걷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것들인 것처럼 다가왔다. 고개를 더 반듯이 하고, 지나가는 것들을 조목조목 찬찬히 훑어볼 수 있었다.  


‘엄마 저 ‘전당포’라고 쓰여진 곳은 뭐예요?’ 소년은 엄마 손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

엄마는 ‘사람들이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물건을 맡기고 돈을 얻어 쓰는 곳이야’라고 답해주었다. 

조금 더 걸어내려 가자 가게의 모든 문을 열어 놓은 채 열심히 다리미질을 하고 있는 세탁소가 나타났다. 세탁소 한 켠에서 아저씨가 열심히 다리미질을 하고 계셨고, 아저씨를 순간순간 가릴 만큼 풍성하고 허연 김이 피워 올랐다. 

‘왜 저 다리미는 저렇게 김이 피어올라요?’

‘다림질할 때 살짝 물을 뿌려줘야 잘 다려지는데, 저 다리미는 물을 뿌리는 것까지 달고 있어서, 편하게 다리미질할 수 있게 만들었네.’. 소년은 세탁소 가게 앞을 지나 뒤쪽으로 멀어질 때까지 고개를 돌려 세탁소 아저씨의 기민한 손놀림과 가끔씩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쳐다보았다. 


시장통에 이르자 가족은 외식 메뉴를 결정하느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힘들지 않게 중국집으로 향했다. 외식을 한다고 한 순간부터 소년의 머릿속엔 짜장면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부모 입장에서는 가격 대비 가장 만족도 높은 외식 메뉴로 짜장면 만한 게 없었을 것이다. 소년에겐 시골 장날 아빠와 먹었던 짜장면의 기억이 더해져 있었다. 



근방의 시골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시골장으로 크게 홍산장, 문산장, 한산장, 길산장, 서천장이 있었다. 장의 크기로 보면 군 읍내에 서는 서천장(나머지는 모두 면 읍내에 서는 장들이다.)이 제일 크고 화려했으나, 시골마을에서 20Km가 넘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고 가기 쉽지 않았다. 거리가 8km(20리 ) 정도여서 어느 정도 닿을만하면서 (걸어서 오고 갈 수 있으면서), 제법 규모도 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던 곳은 홍산장이었다. (홍산장은 지금도 오일장 및 일상적인 전통장으로 명백을 유지하고 있다.) 오일장이 큰 장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우시장이 서는가 아닌가로 판가름 나기도 하는데, 근방의 면단위 오일장 중에서 우시장이 서는 곳은 홍산장이 유일했다. 한산장은 모시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했지만 우시장이 서지 않았고 일반 생필품 시장, 음식매장 규모에서 홍산장에 필적하지 못했다.


소년에게 홍산장의 시끌벅적함과 화려함을 경험하게 해 준 것은 할아버지였다. 손자가 7살 되던 해, 할아버지는 하얀 모시정장으로 모자부터 구두까지 잘 차려입으시고 손자의 손을 이끌고 버스 정류장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육 척이 넘는 키에, 장날이면 워낙 멋지게 입고 나타나는 걸로 유명한 할아버지여서, 그 깨끗한 모시정장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아빠도 아닌 할아버지가 손자 손을 끌고 나오는 건 보기 힘든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육 척의 할아버지에게 꼬마는 매미처럼 붙어있었다. 


“아이쿠.. 인숙이 할아버지, 그 꼬맹이를 달고 어떻게 장을 보시려고요?” 사람들은 꼬마와 할아버지를 웃으면서 쳐다보며 이구동성으로 떠들었다. 

“응, 내 손자 아주 잘 걸어. 걱정들 마시게. 허허” 버스 정류장을 겸한 송방 안 긴 의자에는 장에 가는 버스에 올라타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는 사람들의 소음을 누르고 송방 안에 꽉 찼다. 긴 의자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충분히 앉아 있었는데, 옆동네 넉살좋은 종구네 아주머니는 그 와중에 틈새를 만들어 비집고 들어 앉았다. '아이구 다리야. 조금씩만 땡겨봐요. 같이 좀 앉게' 의자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잠시 엉덩이를 조금씩 댕겨주느라 거의 동시에 엉거주춤 일어났다 앉았다. '야, 이 여편네야. 고만 좀 해. 이쪽이 떨어지겄다.' 필요한 소리는 절대 참지 않는 석규엄마가 지청구를 해대자, 종구네는 조용해졌다. 


“금쪽같은 손자한테 장 구경시켜주실라고, 데리고 나오셨구먼” 평소 할아버지와 친분이 많은 송방 아줌마가 꼬마한테 알사탕 하나를 건네며 할아버지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지, 임자가 내 계획을 짚었구먼. 일찍부터 세상 구경도 시키고 맛있는 것도 사 먹이고 해야지. 허허허” 다시 송방 안은 할아버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홍산장으로 가는 버스는 사람들과 내다 팔 물건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들어찼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가랑이 사이에 서서 두 손으로 할아버지 왼쪽 허벅지를 둘러 안고 20리 길을 꽃꽂이 서서 버텼다. 용케 자리에 앉으신 아줌마가 소년의 팔을 댕겨 무릎에 앉히려 했지만, 소년은 '괜찮습니다.'하고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홍산으로 가는 버스는, 동네 형 누나들이 다니는 국민학교 앞을 지나, 진등재를 힘겹게 넘어 부여군으로 진입하면서 속도를 더했다. 진등재까지는 오르막이었고 진등재를 넘어서부터는 홍산평야로 내려서는 내리막길이었다. 송방에서 진등재까지 4km 정도의 길에서 버스는 10번 이상을 서서 사람들을 태웠다. 이미 뺴곡한 버스였는데 10번째 정거장에서 아줌마 2명이 더 올라탔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버스에 오르는 계단 맨 밑쪽에 끼워진 채 버스는 출발했다. 진등재부터 홍산장까지는 거의 서지 않고 달려 나갔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홍산장에 닿을 수 있었다. 


홍산 정류소는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손님을 태우고 온 버스들과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는 사람들, 팔리려 나온 각종 농산물 특산물들 바구니와 지게가 뒤엉켜 장관을 이루었다. 할아버지는 소년을 한 팔로 앉아 들고 천천히 장터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을 옮기면 할아버지 또래의 다른 할아버지가 구성진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급기야 할아버지가 가장 친한 옆동네 오랜 친구를 만나 아침나절부터 주막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때 소년은 처음으로 막걸리의 맛을 알았다. 할아버지는 좀 먹어봐도 괜찮다면서 작은 컵에 막걸리를 따라 손자에게 주었고, 손자는 두 번에 나눠 마셨다. 첫 번째는 무슨 맛인지를 확인했고, 두 번째는 달고 신 맛을 즐겼다. 


점심 경에 할아버지와 손자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서성이는 손자의 아빠를 만났다. 같은 날 장에 가는 것을 미리 나눌 정도로 두 사람 다 살가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소년의 아빠는 아버지가 장에 오신 것을 알고 있었으나 마주 칠일은 없으려니 했다. 그래도 장에서 마주친 부자지간인지라 정류소를 낀 홍산 삼거리, 그 번화한 거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중국집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와 아빠를 앞에 옆에 두고 소년은 신기한 듯이 두 사람과 가게 안을 두루두루 살폈다. 가게 안은 유명하다는 짬뽕과 짜장면을 먹기 위한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뭐 드실까요?” 자식이 아버지에게 먼저 말씀을 건넸다. 

“뭐, 나야 짬뽕 곱빼기에 만두 하나면 돼야. 손자는 뭐 먹나” 할아버지는 아들과의 이런 대화가 쑥스러운 듯, 물어보는 아들을 외면한 채 손자를 보면서 대답했다. 

“인철이는 뭐하러 데리고 나오셨어요?” 거기에는 자신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해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조금 묻어 있었다. 

“사내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견문을 넓게 쌓으면서 커야지. 동네에만 처박혀 있으면 세상 넓은 줄 모르게 되지.” 평생 4발 쇠스랑을 들고 논바닥과 싸워 온 아버지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전해졌고, 아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날 소년은 처음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짜장면을 쉬지 않고 입에 넣으면서도, 앞에 앉은 아버지와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먹는 모습을 가끔씩 번갈아 훔쳐봤다. 집에서 엄마가 차려 준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다. 뭔가 그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은 사람들끼리 일종의 모의를 하려고 밖으로 나온 느낌. 그 밥상이 마땅치 않아 밖에서 또 다른 음식을 즐기기로 한 혹은 같이 뭔가를 모의하기 위해 별도의 장소에서 만난 느낌. 일종의 동료의식 같은게 그 테이블위에 있었다.


색깔이 그렇게 검은 음식은 처음이었고, 검은 음식이 그렇게 달콤하고 짭짜름하여 입에서 계속 당기는 것이 신기했다. 면을 국물이 아닌, 소스와 같이 먹는 것도 생경한 경험이었다. 국물이 없는 묵직한 소스와 면이 입에 씹히면서 국물음식과는 다른 차원의 깊고 풍부한 맛이 전달되었다. 묵직하고 깊었고, 씹는 맛은 복합적이었다.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그때의 짜장면의 맛뿐 아니라, 그때 그 테이블위에 존재했던 어떤 일체감이었다. 소년의 기억 속에 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밖에서 만나 뭔가를 나누었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짜장면은 그날의 기억, 그날을 기억하기 위한 매개체로 소년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집에서, 마을에서, 논에서 보던 그 어른들이 아니었다. 소년이 모르는 넓은 세상을 이미 여유롭게 경험하고 헤쳐나가는 새로운 어른들. 여유가 넘치는 어떤 사람들이었다. 


외식은 일종의 멤버십 활동과 같은 것은 아닐까? 소년이 엄마아빠와 처음 나온 외식자리에서 할아버지와 아빠와 함께 했던 그날의 느낌을 떠올린 이유는 외식이 주는 긴밀한 일체감을 유사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년에게 가족은 할아버지를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엄마아빠와 자신이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이 작은 외식 테이블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소년은 엄마가 생전 처음으로 아빠의 소주잔을 채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엄마가 아빠 앞에 놓은 소주병을 다소곳이 잡고 비어있는 잔에 소주를 따를 때, 아빠도 놀란 듯 곁눈으로만 엄마를 쳐다보았다. 놀라운 일들이 이 작은 외식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소년은 마냥 히죽거리며 어른들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 그리고는 깨달았다. 이 외식은 꼬마 자신을 위한 것만은 아니구나. 저 어른들도 이런 자리가 필요했구나. 정말 오랜만에 저 분들도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았구나. 평생 손수 노동하여 만든 음식만 먹었던 분들이 오늘만큼은 노동을 내려놓고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즐기고 계시는구나.


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는 좋아하시는 대중가요를 낮게 흥얼거리시며 언제나처럼 앞에서 걸었고, 소년은 엄마의 손을 잡고 뒤에서 걸었다. 아빠가 앞에서 걷은 것이 혼자 걷고자 함이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내며 걷는 것일 수 있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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