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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May 01. 2019

아빠가 다시, 돌아갔다.

몇 번인지도 모를 배웅을 하다가


조금 전 아빠가 다시 돌아갔다. 당신의 삶이 옮겨간 자리, 중국으로. 비자 때문에서라도 일 년에 두세 번 들어오시지만 오가는 길이 국경을 넘어서기 때문일까, 오고 갈 때 처음으로 혹은 마지막으로 만나는 공간이 공항이라는 게 우리 부녀의 사이를 더욱 멀게만 느끼게 한다.


왜일까. 아빠가 올 때마다 나는 바빴다. 바쁘게 뛰면서 자주 넘어지기도 했지만, 한국에 언니와 둘이 남겨지던 2년 전, 그 겨울 이후로 삶은 나날이 안정되어 갔다. 그럼에도 마음은 되려 퍽퍽하고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지내는 삶, 그 가운데 소홀해진 살림. 그런 모습을 아버지께 들키는 일이 마음에 쓰였으니까.


이전에는 늦은 아침을 깨우고 때가 되어도 끼니를 챙겨 먹지 않는 딸들을 나무라더니 이제는 그저 안쓰러운 눈빛으로 “니들이 고생이다.” 하는 아버지가 고마웠지만 조금은 낯설었다. 그럼에도 가볍게 아니야,라고 할 뿐 균형 잡힌 삶을 보여주기 위해 기를 쓰지도 못하고 제 일정을 따라 눈을 뜨고 집을 나섰을 뿐이었다.


떠나기 전, 안경을 맞추겠다는 아버지께 처음으로 내 카드를 드렸었다. 지난달, 본격적인 시작을 한 출판사 <문장과장면들>의 카드. 작은 딸이 책으로 번 돈으로 아직 대단한 건 해드릴 수 없어도 안경 하난 좋은 걸로 해주고 싶다고. 제법 값이 나간다고 해도 이젠 그 정도는 괜찮은데, 아빠는 공항 수속을 밟으면서까지도 “네가 부담이 됐을까 봐 걱정이네”라며 걱정을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직은 해줄 수 있는 게 작은 것들이라 그저, 어서 더 달려가고 싶을 뿐이다.


생각보다 짐을 부치는 일이 길어져서 별 대화도 하지 못한 채 아빠는 탑승로에 줄을 섰다. 늘 급한 성격 탓에 부지런히 준비하고 나와 서둘러 탑승수속을 밟는 아빠. 그런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도 익숙한데 이상했다. 3년 간, 얼마나 자주 반복된 배웅인데 눈물이 났다. 별안간 너무 애틋했다. 그 애틋함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제는 당신의 집이 아닌, 딸의 집. 딸의 방에서 머물며, 이런저런 사소한 눈치도 보고 뱉으려던 잔소리를 끝내 삼키기도 하고 바쁘게 현관 밖을 나가서는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딸들을 바라보며 아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다. 여전히.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언제나 늦게 깨닫는 서툰 딸로서 아빠의 가슴 한가운데 애정과 걱정을 이불 삼아 누워있을 거다. 아버지는 결코 그런 딸을 서둘러 내쫓지 않을 테니.




/아부지 사랑해. 너무!




당신의 인디, 가랑비 @garangbimaker

출판사 [문장과장면들] 대표
/매일 한 문단을 남깁니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를 출간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garangbimaker

https://www.instagram.com/sentenceandsce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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