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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Apr 30. 2020

엄마의 청춘만 아쉬웠던 것이 아니라 아빠의 청춘도,

그의 출근길은 드라마와 달랐다.



 

  .......벗은 양말을 늘 그 자리에 두는 사람.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눕는 사람. 엄마와 내가 없으면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 우리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술을 너무 가까이 하는 사람. 오랜만에 마주하는 밥상에서 늘 공부하란 말만 늘어놓던 사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재수하기를 바랐던 사람. 졸업을 하고 나니, 공무원 공무원 노래를 불렀던 사람. 무엇보다도 엄마의 존재와 역할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던 당신이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지옥철을 감당할 수 없어서 탔던 출근길 첫 차에서 예고 없이 다가온 아빠의 무게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아주 조금씩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달리, 그의 출근길에는 검은 양복도, 넥타이도, 와이셔츠도, 구두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꼭두새벽에 하루를 시작했고 이따금 우리를 두고 타지에 나갈 때면 몇 개월씩 귀가하지 못했다. 뜨거운 계절에는 빨갛게 익은 피부를 식히다 잠들기 바빴고 꽁꽁 얼어붙는 계절이면 높은 혈압 탓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집을 나서야 했다. 가끔은 싫은 술자리를 견뎌내야 했고 끊었던 담배 냄새를 수도 없이 삼켜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남은 마지막 붕어빵과 어묵을 모조리 사 와 우리 앞에 펼쳐놓았던 당신은 유독 아내에게 표현이 서툴렀다.

  나는 정말 못된 년이다. 그런 당신을 알면서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속에 숨어 외면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내 안의 가둬두었던 아빠가 아닌, 내 앞에 있는 당신을 똑바로 보고 싶다. 


박후식의 딸, 박수진 <수진 아빠, 후식 씨>


엄마의 청춘만 아쉬웠던 게 아니라,
 아빠의 청춘도 더없이 빛날 수 있었다고.



  타지의 좁은 여관방에서 어린 처자식을 그리워하며 몇 달의 밤을 지새웠을 지금 나와 같은 나이의 당신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서툴지만 여전히 노력하고 있으니, 부디 조금만 더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어 달라고.

  나는 그렇게 엄마의 나이를 지나, 아빠의 나이로 달려가고 있다.



가족 에세이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수록글 [수진 아빠, 그리고 후식 씨] 중




가족 에세이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엄마의 청춘만큼 빛날 수 있었던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고자 21명의 자녀들이 모였습니다.

21명의 작가진은 서로 다른 감정과 시선, 폭넓은 장르적 표현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에세이, 시, 소설, 만화, 그림, 사진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한 인터뷰, 익명의 자녀들과 함께한 설문까지.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한 권의 책은 자녀들이 쓰고 아버지와 함께 읽는 책입니다.  


책 속 인터뷰와 설문을 부모님과 채워나가보세요. 


아버지께 전하는 편지, 오래된 추억을 기록하세요.

책 속 히든페이지


  가정의 달, 어버이날. 부모님과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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