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오마주 에세이
언젠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왜였을까. 난 늘 그랬다. 어떤 서사를 만나든 주인공보단 주인공 친구의 절절한 짝사랑을 응원했다. 잘 보지도 않는 드라마에 간만에 꽂혔다 하면 언제나 저조한 시청률의 것이었고 한 달에 몇 번이고 극장을 찾는 내게 경적을 울리던 것은 언제나 아무도 모르게 오르고 내리던 영화였다. (중략) 그래, 이 애정의 출발은 묘한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저서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도서 보기)
한때 대중음악보다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게, 상업영화보다 저예산 예술영화를 즐겨 보는 게 근사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성공이나 신화보다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더 많은 가치를 두기 시작하던,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가 막 열리기 시작하던 시기였을 거다. (어느 시점으로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무렵의 나는 지방의 국립대에서 국문학과 기업교육학을 복수 전공한 3학년이었다. 작가라는 꿈을 공공연하게 꾸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열어줄 것만 같은 대기업 취업 역시 놓지 못했던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지독하게 학점 관리를 했고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다양한 대외활동 경험치를 쌓았다.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밤중에는 습작을 이어나갔다.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당당하게 로비를 들어서는 내 모습과 작가라는 이름으로 독자들 앞에 서서 글 너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내 모습이 꿈속에서 부지런히 교차되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작은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작은 영화사에서 나온 영화(혹은 영화사 없이 제작된 한 뼘의 영화들)와 아직 앨범을 내지 못한 인디 뮤지션들의 습작곡을 줄줄 외곤 했다. 순전히 작품이 좋았던 경우도 있었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태도와 기세를 동경했던 듯도 하다. (아직)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없어도 자기 확신이 창작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로부터 배웠다.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용감하게 출판사도 없이 첫 책을 용감하게 낼 수 있던 것도 나의 오랜 응원과 애정이 향했던 작은 영화와 음악들 덕분이었다.
나의 스물셋에서 서른 하나 사이에는 어느덧 아홉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가수는 자기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간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마이너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마이너한 작가로 남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여전히 유명보다는 무명에 기울어진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드문드문 발견되지만 대체로 고요한 인지도와 화제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명세와 돈만을 좇았더라면 작가의 일을 결심하지 않았을 테지만, 8년이라는 시간동안 제자리를 맴돌게 될 것을 알았더라면- 그 시절, 나의 선택은 달랐을까.
의연하게 살아가고 있다지만 '잔잔한 인지도와 예측 가능한 범위의 성과.' 지루한 것을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내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성실하게 치열하게 발버둥치며 써낸 시간들이 가끔은 꼴찌의 성실함처럼 덧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비밀스럽게 지원했다가 비밀스럽게 탈락하고만 문학상들, 수개월 품 안에서 갈고닦아 펴낸 책의 출간 직후 순위를 새로고침하며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던 아침들. 열심을 다 하면 (고작) 죽는다는 세상에서 너무 열심히 하는 일은 천재가 되지 못한 이들의 촌스러운 애씀이 아닐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날이 내게도 도래한 것이다.
2024년의 해가 밝고 나를 괴롭혔던 건 자기확신의 부재였다. 잘 썼다, 못 썼다는 외부의 말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맞 자신에게 더는 해줄 말이 없어지자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정신없이 고꾸라졌다. 그러던 중 박완서 작가가 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2024)라는 글을 읽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직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수록글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 중
우연히 닿은 마라톤 현장에서 기대했던 선두주자가 아닌 꼴찌의 얼굴을 마주하며 작가가 느꼈던 감정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정직하게 고독하게 환호 없이 달리는 사람들이라니. 내게 홀로 쓰는 삶에 용기를 심어준 작은 음악가, 영화인들이 떠올랐고 그 끝에는 아무도 모르게 고독히 새로운 문장을 낳느라 진통을 겪던 나의 밤들이 떠올랐다.
'왜 그들이 그들의 체력으로 할 수 있는 하고많은 일들 중에서 그 일을 택했을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수록글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 중
작고 좁은 나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골몰하는 나의 삶은 어떻게 비춰질까. 굳이 고된 나를 택하여 읽어주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긴 시간 나라는 한 개인의 삶에 짙은 애정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의 고집스러운 나날들은 동경과 연민 그 어디쯤으로 비춰질까. 첫 책에 호기롭게 써냈던 문장이 있다.
아직 세상 앞에 온전히
제 빛을 밝히지 못했어도
내 가슴 속에서 깊이 숨 쉬는 사람.
홀로 컴컴한 길을 걷고 있을 때
자꾸만 찾게 되는 사람이었으면
모든 것이 시들시들 힘을 잃어갈 때
숨고 싶은 한구석이었으면
남몰래 숨겨 두었다가도
가끔은 꺼내 보이고 싶은 자랑이었으면.
저서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
용감하게 써냈던 문장처럼 누군가는 나의 작은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까? 어쩌면, 왜 여전히 앞서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지 의아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약한 삶에도 열렬한 갈채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아직은 스스로를 연민하는 게 아니라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누구도 경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이 꼴찌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하기로 작정하기 때문에. 그러나 죽을힘을 다한다고 누구나 선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레인을 이탈하지만 않는다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이너가 될 줄 모르고 책을 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대중 작가라는 이름은 멀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의 문장들이 조금 더 멀리 나아가고 있음을 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게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꼴찌라도 좋으니 계속 이 길을 달리고 싶다.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조심스럽지만 용감하게 뱉어보고 싶다.
“마이너 꼴지가 될 줄 모르고 시작했는데요, 계속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선두가 될지도 모르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꼴지도 선두도.”
I (본인. 8년 차 에세이 작가) 스물셋에 첫 책을 펴내며 삶은 전복되었어요. 선택한다는 것은 이외의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믿어요. 쓰는 삶을 살기로 선택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던 다른 모양의 삶에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아요.
연재인의 한마디
쓰는 삶은 외롭지만 책을 펴내는 삶은 외롭지 않아요. 얼굴은 모르지만 나를 누구보다도 깊이 읽고 이해하는 독자들이 늘어가는 삶이니까요. 마이너 꼴찌에 가까운 시절부터 함께해 주세요. 꾸준히 나아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