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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Jan 19. 2017

우리들의 오래된 이별, 107동과 나

2017, 여전히 우리가 두고 온 계절들.


지극히 가랑비적인 스무번 째 이야기

<우리들의 오래된 이별, 107동과 나>





107동과 오래된 이별


우리의 학창시절을 함께한 오래된 의자들을 보내주던 날


'어릴 적엔 교복을 입으면 이곳과 안녕하게 될 줄 알았다.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오르내리게 되면서는 "그래. 교복을 벗으면 그때 안녕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넓어진 보폭으로 더 멀리 걸음을 떼었다가도 어스름이 짙게 내려 앉을 때면 결국, 변함 없이 되돌아야 했고 익숙한 걸음을 꾹꾹 밟아댈 때면 찾아오던 안도감과 함께 자꾸만 멀어지고 싶은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하던 107동. -오키로북스, <이별의 순간들> 中 가랑비메이커 '107동과 오래된 이별'


나의 살던 고향은,
낡은 아파트 107동
그 곳의 작은 집이었다.



자그마치 20여 년이었다. 언젠가, 라는 이름으로 막연한 이별을 예상했고 기대했던 걸음을 떼기까지. 나와 언니, 우리의 유년과 사춘기는 모두 107동에 있었다.




우리의 유년, 우리의 청춘


언제나 익숙한 배경이 되던 단지 앞 산책로


태어나 처음 삶을 시작한 곳은 아니었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처음으로 인지하고 기억하던 그 순간에 아마도 우리는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종종 투닥거리긴 했지만 유치한 장난을 하며 정답게 지내던 옆집 자매에게 윤주라는, 인형처럼 작은 동생이 생겼고 그 아이가 조금씩 걷기 시작하던 그 복도를 우리는 여전히 수백가지의 표정으로 지나왔다. 비록 세자매들이 왁자지걸하던 그곳에는 머지 않아 수많은 낯선 얼굴들이 저들의 삶의 어느 부분들을 충실히 채워나가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지만 말이다.


모두가 우리만 남겨둔 채 떠나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도 엘리베이터는 낯선 얼굴들을 실어내리고 또 올랐지만 우리는 여전히 돌아올 걸음만을 떼었을 뿐이다. 그 걸음은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았고 이별이라는 것은 영영 우리의 몫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 오키로북스 <이별의 순간들> 中 '107동과 오래된 이별'




나를 길러낸 곳, 익숙하고도 정겨운 그 곳을 떠나던 2016년의 마지막 달.


떠나지 못하는 게 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마주보던 정답던 얼굴들은 모두 각자의 시계에 따라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데 가만히 멈춰선 나는, 시계가 고장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멀어지고 싶던 공간이었던 적이 있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어느 날에는 그 익숙한 공간에서 모두가 낯설어서.


그럼에도 앞으로의 삶 가운데에서도 누군가 내게 가장 고마운 시간들, 혹은 아팠던 시간들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나를 길러낸 107동이라고 답할 것이다. 많은 것들이 내게 휘몰아치던 어느 밤에도, 고요하게 흘러가던 무던한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나를 품어주던 이곳.


나는 이곳, 을 떠났다. 2016년의 마지막 달의 마지막 주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전부이던 107동을 '그때, 거기' 라고 이야기하기 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안녕이라고 말하던 순간



기억이라는 것이 날 때부터, 그러니까 평생이라는 시간을 줄곧 한 자리에서 자라왔던 나에게 이사는 처음 겪는 이벤트였고 아마도 앞으로의 삶 가운데에서도 일생일대의 커다란 사건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마치, 원래 그자리에 태어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된 가구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던 잡다한 삶의 흔적들이 하나, 둘 들리고 익숙한 자리에 누렇게 부끄러운 자국들을 남겨둔 채 떠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조금을 들떴던 마음과는 다시 멀어졌고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를 울리고 달래고 안아주던 나의 오랜 방.


안녕, 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우리에게 이별이라는 날이 다가오고나니 모든 것이 아쉬웠다. 무엇이 아쉬웠을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밤을 이곳에서 지새우기도 하고 잠들기도 했고 많은 얼굴들을 마주했고 떠나보냈던, 내 삶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이 작은 공간에게서 더 아쉬울 게 있을까, 했던 우리인데- 분명 그랬다. 아쉬웠다.


해치우듯이 삶의 흔적들을 내어버리고 그러다가 종종 멈춰서서 생각에 잠기기를 반복했던 우리에게 마침내 잊고 있었던 맨살을 드러내던 우리 집.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우리집은 여전히 그곳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어릴 적 뛰놀던 놀이터는 이제는 주차장이 되었고, 벨을 눌러 나와서 놀자 하던 친구들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기억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장면들은 사라지지 않을테니, 온가족이 함께 살을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그 어느 곳보다 따스한 공간. 베란다 너머로 크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던, 밥 짓는 냄새가 따듯했던. 안녕, 이제는 정말 안녕.  




우리에게 너의 의미는


20여 년의 세월은 쉰줄에 들어선 아빠에게도 반평생의 시간이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우리가 이제는 대학을 마친, 숙녀가 되어 그곳을 떠나왔다. 처음 학교라는 곳을 입학했고 교복을 입다가 벗었고 조금 더 흘러 학사모를 썼다. 그 모든 시간들에도 예외 없이 돌아가야 할 곳은 언제나 107동, 하나였고 그건 아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여 년의 세월은
쉰 줄에 들어선 아빠에게도
반평생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107동은 새 삶의 자리를 찾아가는 첫 이별이었지만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온 아빠에게도 이 이별은 각별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하는 그의 마지막 이별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긴 세월 함께 해온 삶과 일에 대한 기록.


아빠는 그런 말을 했다. '여기는 아빠한테 축복이자 멍에 같은 곳이었다.' 20대 중반, 그러니까 지금의 자신의 딸처럼 앳된 나이에 처음으로 얻은 직장과 집에서 그는 정말 파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단단한 표정으로 숱한 걸음을 떼던 그의 모든 시간들을 미처 헤아려볼 수야 없지만,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새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아빠가 들려주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고개를 절로 숙이게 했다. 그 시간들의 목격자, 아빠의 아홉권의 일기장은 그렇게 오래된 침대 밑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내게 쥐어졌다. 아빠는 떠나는 날까지도 내게, 그 기록들의 안부를 맡겼다.



중국으로 떠나는 아빠, 그에게 107동은 어떤 의미일까.


아빠는 2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낸 직장과 집을 정리하고 지난 주, 중국으로 떠났다. 인생의 하반기의 시작을 낯선 땅에서 시작하게 될 아빠에게 107동은, 인생의 상반기를 고스란히 보냈고 위태로운 시간들에 휘몰아쳤어도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던 삶의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겨우 반나절만에 모든 정리를 마치고 언니와 내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곳으로 떠나던 그때, 아빠의 표정이 여전히 생생하다. 시원하고 섭섭하다는 감정외에도 많은 것들이 그를 에워쌌을 것이다.



우리의 오래된 안녕을 담은, 언니의 홈비디오


그리고 그 모든 감정들과 과정을 담은 언니의 홈비디오는 우리의 헛헛한 가슴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던 이별, 하지만 아직은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던 날들. 그리고 기어코 찾아온 이별의 순간은, 나흘의 시간에 걸쳐 우리가 습관처럼 기록해오던 영상들에 얽혀 하나의 영화 같은 장면들을 데려왔다.






그래, 나는 안다. 누군가는 고작 이 낡은 아파트와의 이별에 왜이리도 유난인가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이것이 우리가 오래된 안녕, 을 고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키고만 싶었던 이 안녕, 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다시, 우리를 나아가게 할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라는 것도.






가랑비메이커 저서 /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가랑비메이커 인스타그램 /

@garangbimaker


가랑비메이커 블로그 /

http://blog.naver.com/imyourg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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