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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Sep 11. 2020

내륙에서의 바다



Pierre Ambrogiani (1907-1985) "Femmes du Vieux-Port de Marseille" (c. 1945, huile sur toile) 





   내륙에 사는 나로서는 바닷가 여인들의 삶을 알지 못한다. 이해의 측면에서든 감각의 측면에서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들 손에 닿는 바다. 그들 귓불에 닿는 바다. 입술에 닿고 머릿결에 닿는 바다. 서러울 때 달려가 껴안는 바다. 발등을 적시고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몸으로 차오르는 바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도 말할 수 없는 바닷가 여인들만이 알고 있는 수사의 바다. 그녀들 품에 안기는 검푸른 바다의 질감. 겨울 겪어내고 봄의 스웨터를 입은 날의 바다. 초승달이 핀 밤의 바다를 그녀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는 중에 바다는 어떻게 해석 될까. 생선을 경매장에서 떼어다 난전 고무함지 앞에 목욕탕 의자에 몸을 맡긴 여인의 바다는 생업 과는 무관한 어떤 무한의 바다는 될 수 없을까. 칼과 도마의 피비린내을 맡으며 내륙인을 상대하는 여인에게 생업의 바다는 또 얼마나 절단되는 바다 인가. 도시와 내륙 깊은 곳에서 온갖 괴로움들 다 가져와 내다 버리는 바다. 하루에도 수 만 흔들림이 사람의 마음과 빼닮은 바다 앞에서 흔들리며 주저앉아 본 여인들의 바다. 비린내를 묻힌 옷을 평생 입어야 하는 바닷가 여인들에게 바다의 맛이란 무엇일까. 그들 곁 항상성의 거리를 가진 색채의 바다. 진흙으로 빚어낼 수 없고 돌조각으로 깎아낼 여분이 없는 바다. 그래서 늘 부족하고 가난한 바다. 내륙에 사는 나로서는 바닷가에 태어나 살며 바다만 바라본 여인의 눈빛을 나는 해석할 수 없다. 일상이 만들어내는 지루고 지루한 바다는 먹다 버린 빵의 질감처럼 때론 딱딱하기 그지없는 반응 없는 무상물이기도 했겠지. 마음 밖의 바다 여서 마음 맡길 의지처가 되지도 못한 바다이기도 했겠지. 때론 내륙에 사람들에게 달려가 안겨 드는 바다를 질투하기도 했겠지. 어떤 생의 고난이나 괴로운 고통을 겪어내고도 남는 근원의 바다. 생선을 말리고 그물코를 깁고 목선 한 척에 생계를 유지 하는 여인들에게서  바다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가!. 그뿐이랴. 내륙을 버리고 바다로 도피한 여인에게서 바다는 단지 검푸른 펼쳐짐의 바다이기만 할까. 어떤 언어로 그 바다에게 그녀는 고백하고 사연을 풀어놓았을까. 무심결에 닿는 사람의 시선에도 때론 아프기도 하는 생. 바다도 그런 생과 같지 않은가.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이 바다를 동경하고 바다에 닿아서 거기서 그만 음악을 듣게 되고 노래를 부르게 되고 자기 몸을 내 맡긴 여인에게 ‘이끌림’의 바다는 어떤 황홀인가. 채색도 없고 형상도 없는 내면의 상처를 안고 바다로 와서 자기도 자기 몰래 자기를 용서하게 되고 자기도 자기 몰래 바다를 낳아버리고 돌아가는 여인의 뒷모습에 바다는 또 무어란 말인가. 진흙의 내륙에서 발을 빼고 사파이어 블루의 눈을 하고 항구로 이사를 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나는 어느 버스 안 노회한 여인의 입에서 언뜻 들었던가! 그녀의 까무잡잡한 해풍에 그을린 바다 이야기를 내륙 깊숙한 시골의 버스 안에서의 바다.



Vilhelm Hammershoi - Interior with Young Woman seen from behind 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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