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동 골목길이다. 밤 9시 45분이다. 주차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추자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열이 난다. 길 끝에 그가 있다. 내가 묻는다. “밤 9시 45분이나 됐는데, 이러고 싶냐”고. 그러자 그가 되묻는다. “당신은 왜 이 시간에 이런 데 차 댔냐”. 나는 할 말이 없다. 밤 9시 45분인데, 차도 안 다니는 골목길인데. 그는 집에도 가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에 스며 있듯이 있다. 안톤 체홉 소설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어느 관리의 죽음」이었던가. 그는 열 받은 내 얼굴을 차라리 조롱하듯 바라보았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반발을 어떻게 이겨내겠는가. 그는 나 같은 자의 반발을 이겨내는 법을 알고 있다. 나는 돌아선다. 어떤 이는 평생 책 보다 죽고, 어떤 이는 평생 기도하다 죽고, 어떤 이는 평생 술만 퍼마시다 죽는다. 예외지만 죽은 외삼촌처럼 평생 집 나간 마누라 찾아 헤매다 죽은 이도 있다. 모두가 수 많은 주인공들이다. 단편 소설 같은 인생의 주인공들. 내가 열 받아 과속으로 내달리는 차를 빤히 쳐다보는 그의 모습이 백미러에 들어와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 백미러에는 가을 하늘 대신 그의 모습이이 들어서 있을 것이다. 손에 주차 위반 스티커 뭉치를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