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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Oct 31. 2020

개가 지나갔다.

  



   개가 지나갔다. 한파 몰아치는 날이다. 윤기 잃은 털은 헝클어져 곤두섰고,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눈에는 공포와 절망의 빛이 서려있다. 어디서 누가 버린 것인가. 벌써 이 동네를 몇 번이나 돌았는가. 한 때 주인으로부터 사랑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인가. 사랑 받은 기억의 힘으로 이 겨울을 버티는 것인가. 이 겨울, 버려진 개들을 생각하니, 버려진 개들의 동사를 생각하니.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들을 위해 누군가는 울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개는 창밖에 던져진다. 던져진 개의 사체가 사차선 도로 위에 붉은 내장을 드러낸 채 조금씩 조금씩 바퀴에 으깨어진다. 시골의 빈 들길에 버려진 개들이 어슬렁거린다. 저 도시 사람들이 와서 버리고 간 개들이다. 차라지 도심에 버려 두면 쓰레기라도 뒤지고 살 것을. 이 빈 시골에서 어떻게 살라고. 차라리 잡아 먹어버리지. 그러면 제 몸의 일부로라도 남아 있기라도 할 것을. 어쩌자고 이 추운 시골바닥에 저 어린것들을...개들 버린 이들에게 불행이 있기를..그래, 나는 그런 것 때문에 좀 울어야 했다. 펑펑 울어주진 못하지만 조금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울음이 그치고 나면 내 몸에 침묵이 찾아오고, 이 침묵은 기력이 쇠한 개의 몸이 겨울 논바닥에 고꾸라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지금 버려진 개들이여, 이 겨울을 이겨내기를. 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와서. 양지에서 따뜻한 잠을 자기를. 얼어붙은 몸이 녹는 잠을 자고, 그렇게 잠을 자면서 죽음을 맞기를. 전신이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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