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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May 27. 2021

어떻게 우울하지않을 수있는가?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 New York - Metropolitan - The Forest at Pontaubert (1881) (79,1 x 62,5 cm)


Georges Seurat- New York - Metropolitan - A Man Leaning on a Parapet (1881c.) ( 16,5 x 12,4 cm)





 신역사주의 관점에서 미술작품은 개개인의 천재가 말하고자 하는 심오한 의미를 구체화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작품이 태어나게 된 시대 이데올로기의 구현이다. 즉 문학 작품이 그 시대의 산물이라는 말하듯 일맥이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천재를 언급하는 것은 한 개인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술작품은 뛰어난 개인에 의해서 창조되기보다는 그 시대의 사회적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지며 이 에너지가 우연히 한 특정한 미술가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하는 관점이다. 산업화가 시작된 영국의 일반 민중은 고된 노동의 역사와 다름 아니었다. 일례로 공장의 굴뚝 청소부에 어린아이가 동원되었고 그 당시 아동의 노동 시간은 열다섯 시간이나 되었다. '아스니에르의 몰놀이' 그림에서든 등을 보인 남자의 모습. '퐁텐블로 숲'은 점묘 화가의 표현방식에 앞서 시대가 그에게 보여주는 사물과 사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고된 노동 뒤에 취하는 물가나 나무 아래의 사람들 모습...., 그림 안에 깃든 물가의 우울한 사람들, 망연히 물을 보는 사람들. 나무 아래 등을 보이는 모습은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 정서를 장악하는 자본주의 작동 방법은 다르지 않다. 노동과 휴식. 숲과 사람, 저 먼 공장의 굴뚝 연기. 



 The Stone Breaker (1882c.) (olio su tavola 14,6 x 24,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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