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샤르통
눈 덮인 집
-김정용
과실수들에 가려서 바람에 가려서 햇살에 감추어지고 새들의 울음소리에만 선명했다가 다시 구름에 가려지고 과실수들의 꽃피는 시절에는 아예 사라졌다가 산 그늘이 벗겨지면 잠시 창은 비늘이 되고 다시 나무들에 가려진 느린 박동의 심장 같이 마을에서도 멀고 너로부터도 한 참 멀고 소롯길을 걸어서 한 나절 연못을 하나 도깨비바늘이 소매 끝과 바짓단에 달라붙게 되고 고라니가 길섶에 느닷없이 뛰쳐나가는 비탈지고 햇빛이 환해 질 때 포도주빛 흙의 붉은 기운이 몸을 데워주고 바람의 한 겹에 속옷의 느낌이 나고 몇 번의 슬픔 울음이 있었을 때에도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어 주었듯 세월에 깊어지고 쓰러지는 나무에 산 울림이 깊어지는 집에 눈이 내리면 그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나무들의 진기지에 잔여분의 채색이 돋고 낮은 지붕은 서정시가 가득한 옛시집의 겉장처럼 바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