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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Nov 05. 2021

흐린 등불에 흰 장미 한 다발

주세페 미그네코


  흐린 등불에 장미 한다발

   -김정용


  흐린 하늘이 아팠던 하루였나요

  순부두찌개를 먹다 노모가 떠올라

  하나로 마트에 가서 순부두 두 덩어리를 들고 돌아서다

  바구니에 담긴 한 다발 오천 원의 백장미 들었어요


  흐린 하늘이 아팠던 하루였나요

  등불 하나에 장미 한 다발을 켜고 밤을 지샐 준비가 됐나요

  흰 종이에 모나미 볼펜을 두고 앉았으면 여백의 우주가 귓속말하는 소리가 들렸나요


  흐린 하늘이 아팠던 하루였나요

  샛강의 중심에 흰돌이 모여 궁리 중인 것을 보고 거기 머리통을 함께 두고 싶었나요


  강을 끼고 펼쳐진 들판엔 나락 이삭 한 톨 남김 없는 수확

  추수의 끝 뻘논에 나락 알갱이 쪼던 멧비둘기 출현이 사라진 들판

  흐린 하늘의 통증을 느낀 하루였나요


  순부두 먹고 열기 오른 몸 서녘의 흐린 하늘에

  맡기면 희멀건 인생의 한 종착에 닿았어요


  달을 두고 국화가 돋는 마당에까지 한 종착을 거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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