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정말
- 김정용
이러다 정말 전쟁 한번 겪지 않고 전쟁 시를 쓰나요 전쟁 통에 국수를 삶고 내복 장사를 하고 초콜렛을 매점매석 하는 생체험 땅콩 농사 밭 위에 탱크를 올려놓는 바이올린 F장조의 전쟁은 없나요 습작하던 물결 시는 포기하더라도 정말 전쟁 한 번
이러다 정말 만화방창의 엄동은 오지 않나요 쓰레기 더미에 깡통 들이 날뛰거나 담벼락 담쟁이의 하늘 점령은 못 보나요 달에게 달라붙은 거미를 보는 건요 우리 손톱 서로의 살갗 밑으로 파고드는 희열은 희석되는 건가요 달달 외워진 사랑을 설탕 녹인 물처럼 짜내고 싶어요
이러다 정말 냇물에 발 담그는 백로 한 번 못 되어보고 여름 가지에 멍게 같은 눈송이 앞에 너를 상기하는 회벽에 보랏빛 고사리가 피는 얼토당토는 없나요 알 만큼 알고 살 만큼 살았다는 양반들이 탁구 하면서 일 점 가지고 얼굴 붉히는 건 지속 가능하겠지만 이러다 정말 발등에 돌 떨어져도 나무는 꽃 피는 봄이려니 할까요 항아리 가득 소설을 채워 놓고 부패 할 때까지 묵히는 건요
이러다 정말 가마솥에 닭은 두 시간 속성으로 길러진 햇 것이고요 반품 처리되어 한 시간 속성처리 되고요 오리털 외투를 한 여름까지 입고 가는 대유행이요 그래야 해요 꼭 반드시 와야 해요 이따위 극단으로 그런 꼴 못 보게 돼요
주차장을 빠져나와 해안가를 방황하는 인간 혐오증에 걸린 기계 들을 뉴스로 보고요 혼자 걸어요 나무랑 이야기해요 언성을 높여 더 크게 의사전달을 주고 받아요 나무족이 되어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길의 번지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