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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Dec 18. 2021

시큰둥할 때



  시큰둥할 때

  - 김정용


 시큰둥할 . 고향에서 제일 높은 산동네 가서 시퍼런 하늘 바람을 마시 발을 하고 

 시큰둥할 때, 시골의 조용한 일주일 꿈에도 없었고 꿈도 꾸지 못할 일

 시큰둥할 때, 말콤 T 리펙의 인간 군상들의 공허감

 시큰둥할 , 호수를 내려다보집필에 몰두했던 오막살이 비트겐슈타인

 시큰둥할 때, 자살에 관한 소식이 오고 나뭇잎이 떼로 지는 숲길에서 무릎을 꿇는

 시큰둥할 때, 자작나무 몇 그루 있는가 산에 가서 헤아리는 헤맴

 시큰둥할 때, 달이나 덩그러니, 달이나 덩그러니, 주문하듯 중얼대면 뜨려나

 시큰둥할 때, 아니지 이건 아니잖아, 이런 말을 몇 번 듣게 되는 술집 유흥가에 가서 덩그러니

 시큰둥할 때, 돈가스집에 가서 칼질하면서 주변 식탁에서 누굴 욕하면서 밥 처먹는 거 흘려듣는 거

 시큰둥할  때, 김수영이나 백석을 읽고 나서도 시큰둥할 때, 시도 시 같잖은 걸 쓰는 젠체하는, 내까린 글을 읽으면서 확 깨는 거

 시큰둥할 때, 탁구 라켓 들고 탁구장 가서 아무하고 한 판 붙는 거. 지고 이기는 건 고루해서 그냥 한 판 시원하게 붙는 거.

 시큰둥할 때, 달이 덩그래졌나 바람 새는 새시를 열고 먼 이웃에 흐린 창을 보고선 괜히 눈이 노란 까만 고양이 이름이나 불러보는 오밤중. 깜깜아.

 시큰둥할 때, 젖은 걸레로 방바닥을 무릎걸음으로 헤매며 뜬금없이 어머니의 이웃이었던 어른의 한 여름 겨울 외투의 치매 걸음의 골목

 시큰둥할 때,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시인의 시는 더는 읽지 않기로, 지금까지 감동받은 듯이 읽어주었으면 됐고

 싱싱한 대파를 한 아름 만원에 내어주시는 촌로의 한아름 같은 말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꽉 찬 가을의 말

 시큰둥할 때, 슬리퍼를 질질 끌고 한 겨울 들판에서 바라봤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트리 지금쯤 불 켜졌으려나

 시큰둥할 때, 백일홍 꽃그늘 아래 잠자던 노숙인을 깨웠을 때의 그의 혼란과 당혹감에도 잠에 취한 흔들리는 걸음걸이

 시큰둥할 때, 너랑 연탄난로 곁에 마주 앉아서 너랑 나랑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보는 서로의 얼굴

 시큰둥할 때, 내가 죽었고 후에 포클레인이 무덤을 파헤치는 거야, 관공서 들어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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