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스웨터
-김정용
사거리 붉은 스웨터를 입고 서 있었어요 누군가의 백일홍이고요 누군가의 백일몽이고요 누군가의 실핏줄이고요 누군가의 지시 대상이고요 누군가의 정제된 불온이었고요 누군가의 건조주의보였으며 일회성 품격이었어요 손끝이라도 닿고 싶은 두 풀꽃 사이였어요.
사거리 붉은 스웨터가 동네에 소문이 났어요 거기서 헑은 하초를 드러냈다는 이 거기서 왼 겨드랑에 붉은 열매를 보았다는 이 거기서 아무르 강을 보았다는 이 거기서 지하생활자를 보았다는 이 거기서 장미를 눈에 꽂았다는 이 거기서 격발을 끝낸 새를 보았다는 이 거기서 추수를 믿지 못하는 장화를 보았다는 이 거기서 온후한 나무의 흐느낌을 들었다는 이 거기서 아침의 발을 세워두고 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이 거 기거 과자봉지처럼 천천히 비워졌다는 이 거기서 불온한 수소문이 되었다는 이
붉은 스웨터를 기다렸어요
꽃으로 열매의 실종을 알렸어요
왔으나 매일 늦은 그림자였어요
자닝하게 들리는 타종이었어요
짜 맞추려는 의도를 가지고 피는 백일홍이었어요
중심부를 내던진 출근이었어요
아마빛 이마를 가진 기다림 망각의 서해였어요
붉은 스웨터로 추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