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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뤼미나시옹 Feb 01. 2022

여기에

 

  여기에

  -김정용



  이월을 사는 동백나무의 곁방살이는 전철을 기다리며 등을 기댄 잠깐 동안이다


 가뭄에 멎어버린 개울물 해거름 해가 핥는다. 등을 보이며 돌멩이들도 머리를 박고 들이켜고 있다. 발아래 풀의 잔등에 내 갈애 까지 얹혀 있는, 여기에


 해 지면 천변에 쓰레기 태우는 여기에, 비둘기가 백장미가 되고, 만해의 시가 흰부전나비가 되는 꿈은 꿀 수 없는 여기에.  


 소읍의 정류장 버스에서 발 내릴 때, 세상 끝에 닿았다는 항상성의, 여기에


 새벽 휴게소 불은 우동을 먹었다기 보단 우동국물에  간장국물  그릇이었다는, 여기에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 광어회 살점 앞에 낮달처럼 앉아 있는 그대와 나 참 무게도 없이 사네 그치


 산의 한 켠 벌목과 파쇄 작업에 후 쌓인 생나무 사체 조각들 모아 정원의 동백나무 밑에 깔아줄까 싶어  백 리터 쓰레기봉투에 담아 안았을 때 가쁜 숨결의 아가미들이 펄떡거리는 숨결에 여기


 작고 달콤한 거짓말 같은 먹빛 블루베리를 따 먹은 직박구리 부부 전깃줄에 앉은 햇살의 여기에,  


 끌어안고 죽을 듯이 팔을 벌리고 듣는 일 분 음악은 여기에 없는 것을 바라는 바였던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나무들의 직립에, 비 맞는 돌들의 묵언에, 굶주리는 초식동물의 여기에, 녹청빛 울림의 범종은 중생 구제에 애쓰고 있긴 하는가, 울림의 진폭에 무명천이라도 짜넣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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