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가에서

창가에서- 오래 살아야겠다

2023. 6. 14

by 일뤼미나시옹


오래 살아야겠다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 아껴 읽는 시집에서 쉰내가 나도록 살아야겠다. 책의 무게가 노쇠한 골다공증의 노인의 몸이 되도록 살아야겠다. 그늘진 자리마다 수국은 한 송이라라도 더 피게 들여다보아야겠다. 나무의 묵은 가지를 잘라주고 햇살의 그윽한 취기에 흔들리는 나무를 감상하는 일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가야겠다. 바람의 결을 몇 개의 시편으로 해석하고, 굴러가는 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별의 농도가 흐려지는 오염된 대기 속에서 세계의 탄식을 쏟아내면서 잔물결 앞에서 반짝이는 물빛 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울 때까지 살아야겠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의 힘에 못 이겨 의지는 약해지고 사람들의 관계는 협소해겠지만 그러는 중에도 먼 별은 피어나고 이른 아침의 새로 태어난 나뭇잎의 신생과 함께 살아야겠다. 그러는 가운데 기다림 하는 동굴처럼 마음의 갱도를 숨기고 있을 테고, 이별한 이들의 대한 생각에서 시가 태어나고, 흐려진 약시 중에 헛것이 보이는 경험을 하는 안개 같은 하루 낮을 살아내기도 하겠지. 그렇게 오래 살아야겠다. 어느 봄날의 석벽 귀퉁이에 비치는 햇살의 농도를 시적 언어로 말하게 되고 그러면 나는 발가벗은 몸으로 햇살에 몸을 맡기는 일광욕을 할 것이다. 삶에의 기쁨이 햇살의 몸으로 있는 한나절 같기만 해도 얼마나 기쁜가. 그러는 사이 나를 찾아오는 고양이들은 세대를 교체하면서 대를 잇겠지 그러는 가운데 집의 뒤꼍에 씨앗으로 시작해서 가녀리게 피었던 응달의 사철나무는 지긋한 고목이 되어 나와 함께 늙을 것이고 그러는 가운데 검버섯이 핀 얼굴 앞에 장미는 피어나겠지. 그러는 가운데 친구가 세상을 떠나거나 꿈에 너의 죽음을 보기도 하겠지 그러는 가운데 장미의 가시에 찔리고 어린 나무의 숨결을 듣기 위해 새벽 냉기를 어깨에 지고 마당에 나가 돌연한 빈혈에 주저앉기도 하겠지. 그러는 가운데 간이역은 사라질 것이고 기찻길을 따라오는 석양이 내리는 플랫폼도 함께 사라지겠지. 소멸하고 증발하는 존재의 빛나는 기억을 껴안고 의자에 앉으면 창에는 물을 갈아주지 않은 화병이 눈에 띌 것이고 나는 천천히 느리 숨을 쉬면서 공기 속에서 오월의 햇살, 혹은 늦가을의 햇살을 주름 많은 손등으로 받아낼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가면서도 기다림 하나 물을 머금은 돌덩이처럼 이끼가 끼고 돌이킬 수 없었던 옛 기억 여전히 아파하는 내가 나를 바라볼 것이며, 사람에서 사랑을 보게 되었던 옛 기억을 맑은 물 안의 돌 같이 명증 할 것이다. 헛것이 들리는가, 창에서 어린 고양이 울음 같은 게 들려온다. 갓 태어나 눈을 뜨고 손톱이 가시처럼 돋은 어린것의 울음소리는 곧 동시 다발로 세상의 모든 담벼락 아래 돌무더기 틈새에 어린것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동시 다발로 수련이 피고 수선화가 돋고 창포가 피어나듯이 어린 고양이들의 발바닥도 분홍색을 띠고 어미를 찾는 실팍한 울음은 공기 속에 핏줄 같이 스민다. 산다는 것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것이고 몸에 대한 관념도 수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늙은 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얼마나 무가치하게 바라볼 것인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흰 종에 깨알 같은 글을 쓰면서 혼잣말을 할 것이다. 나에 대해서가 타자에 대해서 한 페이지. 그리고 정원의 늙은 소나무와 마당 구석에 핀 붓꽃과 동백나무 아래 놓인 의자에 앉은 달과 붉은 살점 같은 꽃숭어리에 대해 한 페이지. 그러는 사이에 기다림 하나는 여전히 범종처럼 마음에 들어앉아 울림이 없이 녹슬어가는 잔향. 그렇게 오래 살아야겠다. 옷가지들은 시대에 뒤떨어져 우중충 할 것이고 몸피에 맞지도 않은 날개처럼 거추장스러울 것이며 신발은 닳지도 않고 퇴색되어 마지막 날의 걸음과 함께 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아주 오래돼 희미한 기억 안에 선명하게 살아 있는 삼월의 강변 바라에 흐드러졌던 공자 가던 개나리 울타리가 떠오를 것이고, 그 시절에 여공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디 있는가. 기다림은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온 것을 멀리 밀어낸 것은 아닌가. 살아냈다 할 어떤 존재 증명은 필요치 않다. 다만 기다림 하나가 있어야 하고 오지 않을 것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본향 같은 것. 그것이 있어서 삶은 더 의지적이면서 무의적인 완결을 맞을 것이며, 새로 돋은 수국의 창에서. 혼잣말.

'그래, 그렇구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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