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가에서

창가에서 - 빈방

by 일뤼미나시옹

빈방


먼지를 털었다. 문이란 문은 모두 열었다. 바깥의 바람이 집안을 훑었다. 천천히 나는 먼지를 일으켜 집 밖으로 내보냈다. 나무들은 깊은 명상의 자세로 들판을 바라보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나무는 새 한 마리를 앉혀 두었다. 커튼을 젖히고 빛을 들였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건 햇빛. 잔기침을 했다. 나무들에게도 잔기침 같은 것이 있을까. 마당의 동쪽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쿨럭거리는 잔기침 같은 꽃들. 천천히 물걸레질을 했다. 체적된 괴로움들이 찾아왔고, 오지도 않은 괴로움이 밀려왔다. 봄바람이 가득한 바깥. 세상의 어느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고 싶었다. 꽃을 기다리는 나무의 육감처럼. 나는 세상의 구석에 서서 내 몸으로 오는 어떤 육감을 믿고 싶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떤 물길은 우리를 곁을 지나면서 우리를 아프게 하듯, 나무를 닮은 한쪽 어깨로 세상을 앓아보고 싶었다.

그런 방이 있다. 기도가 필요한 방이 있다. 기도로 가득 채워야 하는 방이 있다. 그런 방이 있다. 침묵이 필요한 방이 있다. 침묵만 있어야 하는 방이 있다. 맨 발의 방. 냉기 서린 방으로 들어오는 겨울 들판 곁의 가로등빛. 그것으로 족한 방이 있다. 그런 방에서 나는 기도와 침묵과 숙고와 희미한호흡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분명 그렇게 하루를 가득 살아가는 이가 있을 것이다. 기도와 침묵과 숙고와 희미한 호흡으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불을 꺼고 방을 비우고 길을 나서면서도 눈에, 뒷모습에, 발걸음에, 이마에 기도와 침묵과 숙고와 희미한 시 한 구절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딘가, 내가 나를 버리고 돌아왔던 그 어느 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스럭거림과도 같았던 그 어느 날의 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침묵과 숙고와 희미한 기억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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