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금을 읽고 간 물
물가에 앉았다 온다. 물가에 앉아서 봄물 내려가는 소리 듣고 온다. 사람들 발길 없는 봄산 봄물 흐르는 얕은 계곡 잠입하듯 스며든다. 거기서 아무도 모르게 물을 읽는다. 돌을 스치는 물. 돌에 엉겨 붙는 물. 돌 속에 사나흘 유숙하다 떠나는 물. 돌의 엉덩이를 핥는 물. 돌의 자궁에서 흘러나온 물. 눈으로 읽고, 귀로 읽고, 손끝으로 읽는다. 바람이 번역해준 봄물을 읽는다. 나뭇가지가 번역한 봄물도 읽는다. 지난 가을 떡잎이 내려앉아 종이장판처럼 같은 바닥 훤히 들여다보이는 봄물. 내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오래된 책을 닮은 봄물. 복사꽃 한그루 흠칫 흠칫 봄꽃을 내놓는다. 봄물을 먹고 물을 번역하고 있다. 봄물에 담근 손, 손금으로 들어오는 식물의 시간. 나도 봄물을 번역하는 시간.
봄물은 절제한다. 봄물은 흐르다 잠적한다. 봄물의 여행은 짧다. 당신이 어디선가 봄물에 손 담그고 있다면, 내 손금을 빠져나간 봄물이다. 봄물이 내 생의 일부를 해독하고 당신에게로 갔다. 내가 누구에게 생의 일부를 해독하게 하리. 누구에게 내 마음을 풀어놓으리. 나도 번역할 수 없는 생. 이 비밀이 당신에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봄물에게 번역을 허용했다. 흔쾌히 내 생의 번역을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