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밑그림
신천 동로의 오른편 시멘트 옹벽에 가을이 왔다. 여름내 검푸른 물결무늬로 일렁거렸던 담쟁이 이파리에 가을 물이 들고 있다. 가을 물은 어느 날 갑자기 스며든다. 과정이 없고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도 볼 수 없다. 가을 물은 느닷없이 붓을 드는 화가의 붓놀림처럼 이파리들에게 찾아오며, 우리들 마음에 찾아온다. 다르게 말하면 가을 물이 든다는 것은 화려한 휴식을 취한다는 말이다. 담쟁이에게도 이제 그만 활동을 멈추고, 가을 햇볕을 쬐며 ‘이제 그만’ 정지하는 휴식을 말한다. 담쟁이에게도, 담쟁이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가을은 ‘이제 그만’ 이라는 묵언을 들려준다. 아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찾아내는 시간이다. 가을 물이 든다는 것은, 나날의 삶에서 나날의 삶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 마음에, 한 폭의 그림으로 사물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눈을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그림이 있는지. 살아 생생한 그림들이 얼마나 많은지. 시월의 막바지 바람 몹시 불고,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고 찬바람이 몰아쳤던 다음 날. 선홍의 잎잎들 모두 어디로 달아나버리고, 이파리 아래 가려졌던 담쟁이넝쿨줄기들의 얽히고설킨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딱딱한 시멘트 옹벽을 껴안았던 여름의 뜨거웠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시도 담쟁이가 담쟁이의 본능을 포기하지 않은 생의 그림이다. 지극히 구체적으로 여름의 시간을 옹벽 위에서 달렸던 흔적이 그림이 되었다. 그 흔적이 찬바람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다. 어느 화가의 광기가 도져 먹물 머금은 붓을 휘둘렀다고 해야 할까. 캔버스 위에 광기가 만들어놓은 불안과 무질서의 흔적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뒷골목 불량배들의 반사회적 분노의 표출이라고 해야 할까. 늦가을 담벼락에 달라붙은 담쟁이 넝쿨줄기가 만들어낸 추상화 앞에서 생각해 본다. 우리들 각자가 꿈꾸던 마음의 밑그림은 어떤 추상화일까. 가을은 정지와 응시의 계절이다. 가을은 오는 것을 맞아들이는 시간이 아니다. 가을은 오는 것을 그리워하는 설렘의 시간이 아니다. 가을은 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떠나는 것들의 시간을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이다. 가을은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을 견디는 시간이다. 우리들 마음에 그려지는 ‘마음의 밑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마음에 충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충만함이 사라지는 시간 앞에서. 이파리 사라진 담쟁이넝쿨줄기가 그려내는 가을 추상화의 이야기를 가만히 눈으로 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