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 van der Elsken - Café “Chez Moineau ”, Paris, 1952 1
남은 시간이 얼마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
나의 언어가 바뀌게 된다.
자업자득이란
나쁜 의미에서 만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적용할 수 있다.
내가 어느 공동체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이 세계는 내가 구성하고 참여한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연기론'과 다르지 않다.
제도와 정치적 조건 속에서
우리는 얼마든 다른 인간이 된다.
잘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살펴보면 잘 살고,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내가 사는 공동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힘들 게 산다는 것은
경제적 산술의 언어가
우리를 수치상으로 힘들다고 겁박하기 때문이다.
실제의 세계는 풍부하게 움직이고
텃밭에 채소가 자라고, 나무들이 봄을 준비하고
공장이 돌아가고, 아르바이 학생이 일을 하고 있다.
무엇을 보고 보지 않느냐의 문제이기보다
'딥 러닝'으로 어떤 생각의 원형을 가지고
있느냐, 내 주변의 어떤 언어가 있고
그것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나의 언어도 바뀌고 나의 몸도
바뀌게 된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아데닌, 구아닌,타민,시토닌
이라는 뉴클레오티드는
세 개씩 짝을 이루어 그에 대응하는 다양한 아미노산을 만든다.
'접촉' 하면 언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어떤 관계에 의한 접촉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대가 그대의 언어로 그대가 바라는 세계를
접촉하면 그대의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 해의 마무리.
우리는 잘 살아왔고
다가오는 한 해도
우리는 잘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