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빛 무지개는 언제 떠는가. 시애틀 북쪽 캐나다로 가는 청정 햇살의 사거리에서 마약에 취한 여인이 콧물을 흘리며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집도 없다'는 문구 적힌 종잇장을 들고 구걸하던 파란 하늘에 떴던가. 스무 살이 막 시작되던 가을, 이유도 없이 포도향 기득 한 가득한 밤길을 배회하던 밤에 떴던가. 새소리 들리지 않고 봄도 오지 않는 지하셋방에 살던 삼용이라는 이름의 부산 사내의 세류동 달셋방 유리창에 떴던가. 엄마는 점점 노인이 되어가고, 고향의 논밭은 조립식 창고가 잠식하는 여름. 무지개 소식은 없고 뙤약볕에 지친 꽂들은 헉헉대고, 개들도 내 밤의 발소리도 짖지 않는 여름. 세상의 여름은 무지개를 그리워하지 않고, 세상의 여름은 무지개의 방향도 모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