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지리]
나를 움직이는 힘은 말이야, 그건 말이야. 돈이야. 돈. 난 돈 주는 사람한테는 잘해. 그래야 먹고살지. 그래? 맞는 이야기인데, 그건 그렇고. 어디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안 해, 넌? 난, 우리 집. 그렇구나. 그럼, 어디에 있을 때 마음이 안 편안 해, 너는? 난, 우리 집. 어? 그렇구나.
우연히 지나가다 점심을 먹으려고 기다리는 열아홉 두 남학생이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2층에서 3층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 끝. 별관으로 이어지는 철제문을 막 열려는 순간이었다. 뒤이어 물었던 친구 표정이 머쓱해지면서, 급하게 오늘 메뉴로 화제 전환을 하려는 모습에서는 앳된 얼굴이 되살아났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편안한 곳, 그 어디가 있다. 그곳에만 있으면 좋은 추억이 피어난다. 힘이 솟아난다. 방전된 내가 엄청나게 충전되는 것을 느낀다. 바로 '최애'하는 장소에 대한 애착, 즉 장소애이다. 그리스어의 장소, 땅을 의미하는 토포스 topos, 애착,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 phiia가 만났다.
31년을 넘게 살고 있는 우리 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집, 자주 가는 찻집, 매일 걷는 산책로 끝 의자, 너무 좋아하는 00 공원,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꼭 들르는 짧은 등산로,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 머무르고 싶은 공간,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여행지. 심지어는 아침마다 매달려 보는 제일 키 큰 오른쪽 끝 철봉대.
이 모든 곳이, 것들이 크고 작은 나의 토포필리아다. 어제저녁, 오지 않는 지하철을 마냥 기다리는 따님을 태우러 늦은 밤 빗속을 오랜만에 조금 달렸다. 빗방울 사이사이로 나를 비추는 한강 야경이 참 멋지게 거룩했다.
대부분 평범한 우리의 일생은 특정 장소에 얼마간(또는 전 생애를) 머물고 그와 이어진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의 총합이다. 머무른 공간의 총합이다. 일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지금이라고 이야기도 하고, 오늘이고, 몇 년 몇 월 며칠의 총 합.
하지만 화려하고 현대적인 사회에서 자칫 잘못하면 에드워드 렐프의 표현처럼 장소 상실감에 빠져 그 아까운 총 합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다. 그곳에만 가면 행복하고, 생각만 해도 이미 복식 호흡 몇 번 한 것처럼 차분해지고, 스스로 위로를 받는 그런 장소. 그게 아예 없는 현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척하면서 애쓰느라, 그러게 버티느라 힘들었던 오늘은 당장 쉬고 싶다. 그래야 내일 또 파이팅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보면 - 물론 물리적으로 나이 든 것 역시 상대적이라는 의미이고 - 아깝다.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그 시간이, 공간이.
누구나 나의 일생에 토포필리아는 자연스럽게 어찌어찌하다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장소와 그 근처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구석을 빠져나와 두 발로, 오감으로 걷고, 뛰고, 달리면서 구석구석 만나내야 한다. 우리 동네에 이런데가 있었어하면서. 몸이 되는 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래.
진짜 부자는 토포필리아가 많은 사람이지 싶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자기 사느라 정신없는 데 스스로 마음을 위로받고, 알아서 충전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루트를, 루틴을 가진 사람이. 아, 나도 더 부자가 되고 싶다.
난 겨울이 좋다. 특히, 11월이. 두툼한 옷을 입고 쨍하게 살아 있는 느낌으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말캉하게 행복한 일상은 동네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를, 내가 머무는 장소를 색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지고 산 시간이 긴 일생이 최고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이미 첫 눈에 반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