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을 뚫고 지나 위아래를 이어주는 숨어 있는 플라스틱 배관, 곧게 뻗다 휘다 다시 무한히 뻗을 것 같은 가스 배관, 하염없이 제자리에 붙들려 돌아가는 양철 환기구, 봄, 여름, 가을이 다 떨어진 앙상한 왕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가지, 과꽃 줄기.
주인의 엉덩이 온기가 그리운 버려진 녹슨 폐자전거, 깊게 패인 지하 세계의 출입구를 막아 놓은 보드라운 헝겊, 노란 국화 꽃 앞집과 빨간머리 앤의 파란 뒷집 담벼락위 조르륵 양철 물받이, 그 아래서 살며시 내민 새하얀 손바닥.
온 세상을 똑똑똑. 흔들며, 깨우며, 말을 건다. 그렇게 강으로 들어가기 전, 바다에 다 모여 쉬기 전, 끝까지 말을 건다. 비슷한 물방울이 물방울과 서로 비비면서,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을 안아 담으면서, 작은 돌이 큰 돌을 거뜬히 넘으면서, 큰자갈이 작은 자갈을 업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