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마트. 아내의 전화를 받고 들른 그곳에서 거대한 오렌지 진열대를 마주했다. 가로세로 1미터의 정사각형 진열대에 무너진 피라미드처럼 수북이 쌓인 큼지막한 오렌지. 10개를 담으며 지난번의 완벽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 한 알까지 입속에 흥건했던 과즙에 당도까지 흠잡을 데 없었던 오렌지. 마치 오래전, 간판없던 허름한 식당의 제육볶음처럼 우리 가족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 오렌지를 다시 만날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첫 오렌지는 싱거웠고, 두 번째는 푸석했다. '같은 마트, 같은 진열대인데 왜 이렇지?' 하는 의문도 잠시, 내가 어리석은 착각을 하고 있음을 이내 깨달았다.
설마 그 많은 오렌지가 한 나무에서 자란 것이라고, 같은 날 수확된 것이라고, 그러면 다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너무나 무지한 착각이었다.
한 나무에 열린 과일이라도 햇볕을 얼마나 받았는지, 가지의 어느 위치에 매달렸는지에 따라 당도와 과육의 단단함이 달라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망각했던 거다. 복합적인 요인을 광합성이라는 한 단어에 다 밀어 넣었던 것이다.
오렌지만 그럴까? 우리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한 알의 과일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빛깔을 띠고, 당도를 높이고, 과즙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과일과 우리가 결정적으로 같은 운명을 지닌 지점이 있다. 바로, 뿌리 깊은 나무를 제대로 떠나야만 비로소 익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진정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과일이 햇빛을 잘 받기 위해 스스로 방향을 찾아 고개를 돌리듯, 빛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 한다.
한 나무에서 따온 오렌지도 다 같지 않듯,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빛깔(매력)을 찾고, 자기만의 당도(깊은 지혜와 통찰)를 높이고, 넉넉한 과즙(풍부한 역량과 생산성)을 갖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오늘도 삶의 광합성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https://blog.naver.com/ji_da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