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놀이다.
인생은 자기만의 놀이터다.
나는 내 삶의 가장 재미난 장난감이다.
아빠가 자주 이야기했던 이 문장 기억나니? 요즘 아빠가 이 문장 속에서 살고 있단다. 너무 재밌게, 매일 설레게. 아빠 안에서, 다시 작아진 채 쪼그라져 있던 어릴 적 내가 이제 다시 신나 하고 있거든.
왜냐면 아빠는 지금 아빠만의 ‘놀이’에 푹 빠졌거든! 너희가 아빠에게 별명을 지어줬었지? 쉰생아라고. 50이 넘어서도 일찍 자고 새벽에 깨는 신생아같다고. 그 쉰생아가 책 보고 글을 쓰면서 제대로 놀아 보려고 새벽에 일어 난 게 2년이 되어 가네.
어릴 때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 때처럼 다시 제대로 놀기 시작한 거야.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어른이 된 후 처음이야. 재미없던 엄근진, 진지충이 아니라 정말 잘 노는 개구쟁이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중이란다.
원래 매일 나를 찾아왔는데 그냥 보내 버렸던 새벽. 아빠가 그 새벽을 ‘발견’ 하지 못했던 거지. 내 것으로 쟁취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러다 아빠는 언제나 존재했던 ‘새벽’을 ‘발견’ 한 것이란다. 죽음의 친구였던 잠에게 내줬던 ‘새벽’이라는 시간을 아빠가 '발견'해서 '차지'한 것이지.
아빠는 이 시간에 아무런 방해 없이 뛰어놀고 있어.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친구들과 놀았던 그때처럼. 새벽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위대하고 찬란한 아빠만의 새벽에서.
‘발견된 새벽’ 덕에 아빠의 하루는 그 자체로 재미난 놀이로 시작한단다. 놀이를 할 때 기다리는 것도 신나지만 직접 놀아야 신나잖아? 책 읽고 글 쓰는 게 놀이가 된 것도 기막히게 신나지만 이제는 새벽을 아예 점령해 버린 게 엄청나게 짜릿하게 즐거워.
아빠가 요즘처럼 재밌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 바로 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는 거야. 새벽에도 만나고, 아침에도 만나고, 주말에도 만나는. 온라인에서 자주. 서로의 글에 대해, 정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다양한 삶을 접할 수 있지.
아이야,
너도 너만의 놀이 시간을 점령하렴!
너도 네가 원하는 시간을 쟁취하거라!
그러면 그 시간은 오로지 너의 놀이 시간이 되는 것이야.
그 점령한 시간에서 새로운 친구들이 등장한단다.
그렇게 너만의 놀이가 '발견'된단다!
그러면 너만의 재미가 너를 깊고 크게 만들어 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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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표정이 달라진 거 아세요?’
아빠가 글 친구들에게 요즘 많이 듣는 말이야. 이 말만 들어도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솜털 구름 같아져.
어릴 적 친구들과 놀기 위해 달려가던 때의 그 기분처럼. 전날 오던 비가 소풍날 아침에 그치고 햇살이 비출 때의 그 기분같이.
요즘 거울을 볼 때 한참 들여다보는 아빠를 발견하곤 해. ‘아, 저게 나는구나’하고 혼자 씨익 웃기도 하면서.
이상하지? 아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좀 일찍 일어나 읽고 쓰기를 했을 뿐인데. 성형을 한 것도 아니고, 표정 관리를 한 것도 아니고, 깊은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표정’이란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같은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인 거잖아.
‘표정’은 그 사람의 내, 외면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거든. 그 사람이 얼마나 기쁜지, 무엇에 푹 빠져 지내는지, 어떤 기대감으로 살고 있는지, 얼마나 내면이 건강한 지, 정신과 신체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또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맺고 사는지에 대한 것들이 모두 모아 내비쳐지는 게 바로 ‘표정’인 것이지.
아빠의 ‘표정’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이니 그 말만으로도 재밌게 잘 놀고 있는 요즘의 마음이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아 좋아. 우린 누구도 어릴 때 친구들과 공터에서 놀이에 푹 빠져 있을 때, 자신의 표정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어떤 ‘표정’이었을지 어느 정도 알지. 놀이에 푹 빠진 사람들의 표정이 어떤지 말이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표정’은 그의 내면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단순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야. ‘표정’은 일상적인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넘어, 삶에 대한 독특한 태도와 존재 방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거든. 영혼의 언어인 것이지.
그런 면에서 삶을 놀이처럼, 다시 즐기기 시작한 아빠의 표정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눠볼까?
몰입의 표정: 늘 '깨어 있는' 인상
일상에서 몰입하는 순간이 다른 어느 때보다 늘어났어. 하는 일에 깊이 몰입하기 때문에, 아빠의 표정은 종종 '깨어 있는' 인상人相으로 나타나지. 아빠는 인상이 그 사람의 내면, 성격, 영혼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 즉, '생긴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기는 것이라고!
이 말은 몰입으로 늘 깨어있는 인상은 시간 감각이 사라지고, 행위와 인식이 하나가 되며, 외부 자극에 대한 의식이 최소화된다는 의미야. 한마디로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에서 깬 상태를 넘어 수동적인 삶이 아닌 능동적인 삶의 주체로서 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외부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행동하고 사고하며, 주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것이지. 이런 태도는 자기 극복과 가치 창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갖는 것이거든.
또, 인상이 ‘깨어 있는' 상태란 사회적 가면을 쓰지 않은, 진정성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해. 외부의 시선이나 사회적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일치하는 투명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지. 즉,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며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면하는 용기를 가진 표정!
결론적으로, 요즘의 아빠에게 찾아온 '몰입의 표정: 늘 '깨어 있는' 인상'은 단순한 집중을 넘어, 현재에 대한 깊은 자각, 능동적인 삶의 태도, 존재의 진정성, 그리고 삶의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는 존재 방식으로서의, 자기만의 놀이에 푹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란다.
과정의 표정: '흐름'을 담은 미소
놀이는 본질적으로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정해진 결론이 없이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새로운 가능성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개방적인 태도를 지향하게 되지. 삶 자체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창조되는 유희로 여기기 때문에.
유희가 가져다주는 게 경쾌함이거든. 경쾌한 사람들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도 짓눌리지는 않아.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삶의 활력을 얻기 때문이지. 그건 바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란다. 이런 선순환의 과정에서 이들이 지닌 뭉근한 미소를 아빠는 ’흐름을 담은 미소‘라고 부르려 해.
특정 목표 달성에서 오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활동 자체에서 파생되는 지속적인 만족감을 내포한 미소이기 때문이지.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과거에 비해, 현재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경험이 늘어나고 있단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깊이 뿌리내린 의식 상태에!
이런 의식 상태에 있는 아빠는, 아빠의 행위와 주변 환경에 대한 자각 수준이 조금 더 높아지고 있어. 시간을 분절된 단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의식의 연속체로 경험하거든. 출퇴근하고, 먹고, 일을 하는 등 현재의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와 즐거움을 발견하지.
따라서 아빠의 미소는 때로 완벽하게 대칭적이거나 크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기보다는, 잔잔하면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띠지. 이는 외부의 평가나 완벽한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아빠의 내면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정신의 발현이야.
결론적으로 아빠의 미소는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예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고 볼 수 있어. 삶의 매 순간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아내며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채워가는 것이지.
자유의 표정: '장난기'와 '유연성'이 깃든 눈빛
요즘 아빠의 표정에는 다시, '장난기 어린' 혹은 '유연한' 눈빛이 살아나고 있단다. 그 눈빛은 삶이 정해진 경로대로 따라가는, 즉 필연성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이건 마치 어린아이가 정해진 규칙 없이 자유롭게 놀이에 푹 빠졌을 때의 눈빛이잖아. 사회적 기대, 의무, 혹은 결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자발성을 발휘할 때만 나타나는 것이지.
’ 장난기‘는 기존의 질서, 고정관념, 그리고 권위에 대한 은근한 전복적 태도를 담고 있어. 심각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가볍게 비틀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접근해 봄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삶의 다양한 제약을 놀이의 규칙처럼 받아들이되, 그 규칙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때로는 깨트릴 줄 아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지. 유연성이 깃든 눈빛은 삶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연속임을 인정하는 것이야.
그것만이 아니라 그 변화에 기꺼이 적응하며 즐기겠다는 다짐이지. 이는 정답이 정해진 길만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끊임없이 시도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는 단순히 즐거워하는 표정을 넘어, 삶의 제약과 의무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변형시키는 능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야. 이 표정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질문에 '그냥 재미있잖아!'라고 답하는 듯한 여유를 보여준단다.
결국, 장난기와 유연성은 무조건적인 진지함을 비워내는 지혜의 또 다른 얼굴인 것이지. 엄근진, 진지충의 표정으로 삶의 무게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끔은 모든 것을 놀이로 간주하며 스스로 긴장을 풀어내기 위한 것이지.
오히려 이런 태도는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고,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며 행동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의식이라고 볼 수 있어.
유머의 표정: '초연함'과 '너그러움'이 배어나는 말투
단순히 언어유희적 농담을 넘어 에너지 자체가 유머러스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유머란 어떤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두기 능력을 의미해. ’ 초연함‘은 바로 이러한 거리 두기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정신이란다.
이런 말투는 삶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무게를 인지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강인함과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 이는 단순한 낙천주의가 아닌, 삶의 모든 면을 끌어안으려는 실존적 용기의 증명이야.
삶의 부조리,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지. 아빠는 유머를 삶의 무게를 견디는 하나의 전략이자, 존재의 무력감, 허무함을 역설적으로 긍정하는 표현 방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중이란다.
’ 너그러움‘이 배어나는 유머는 나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자기 초월의 태도를 반영해. 실수나 약점조차도 유머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의 발현이니까.
삶의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아는대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지. 유머 가득한 표정은 상호작용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잖아. 그렇기 때문에 상호 소통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더욱 따듯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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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몰입했던 짜릿한 놀이의 기억을 떠올려 봐!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기억 속에는 함께 웃고 떠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거야. 우리는 그렇게 놀이라는 강력한 매개체를 통해 공동체라는 따뜻한 울타리의 즐거움, 상호작용이라는 풍요로운 경험을 자연스럽게 체득해 온 거니까.
놀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너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관계라는 튼튼한 다리를 놓는 마법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어. 친구와의 익살스러운 농담, 가족과의 머리 맞댄 보드 게임, 심지어 낯선 이와의 눈빛 교환 속에서도 우리는 연결감이라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안정감이라는 든든한 토대 위에 함께 즐거움이라는 아름다운 성을 쌓아 올릴 수 있지.
이것은 마치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이 모여 조화로운 음악을 연주하듯,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반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웅장한 놀이야. 승리와 패배라는 얄팍한 경쟁심을 넘어, 함께 웃고 즐기는 과정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되는 놀이. 때로는 집단 지성이라는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경험하게 해 주고, 공감과 연대라는 끈끈한 유대감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을 선물해 주는.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리다 보면, 놀랍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해.
아, 오해하지 마라. 그저 평범하다는 의미가 아니야. 비슷한 생각, 공통된 고민, 함께 찾고 싶은 해결책, 그리고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를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위로와 따뜻한 격려를 서로에게 건네게 되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 표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어릴 적 놀 때 나도 모르게 표출되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이라도 일상에서 되찾아야 한다는, 회복의로서의 표정에 대한 이야기야. 그러면서 우리도 삶을 놀이처럼 사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제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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