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장아찌를 참 잘, 다양하게 만드신다. 양파나 무말랭이 장아찌는 기본이다. 두릅 장아찌는 목구멍을 넘기기 아까울 정도로 향긋한 맛이 깊다. 여기에 고춧대, 새송이 버섯은 물론 이름도 낯선 눈개승마도 아삭한 장아찌로 변신시킨다.
얼마 전 갑자기 들린 엄마한테서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던 장아찌를 한 가지 더 맛볼 수 있었다. 바로, 쪽파 장아찌였다.
쪽파를 자르지 않고 길이 그대로 살렸다. 특유의 매운맛은 사라지고 새콤달콤한 아삭한 맛이 최고였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들렀는데 밥 한 공기를 다 먹게 만든 신나는 맛이었다.
엄마는 '모든' 것을 장아찌로 담글 수 있어 천. 하. 쉽. 다고 하신다. 그런 엄마를 가만히 보면 당신만의 장아찌에 담긴 진한 삶의 철학이 엿보인다.
혼자의 시간 대부분을 간장을 끓이고, 식히고, 재료를 다듬고, 치우고, 재우는데 다 쓰였을 음식. 세상 어떤 일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할 수 있을까. 자신을 다 받쳐서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왜 나인지와 같은 그 흔한 투정 따위의 질문조차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기에 반편생, 40년 넘게 남편의 새벽 도시락을 쌀 수 있었을 거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프다는 이유로, 울적하다는 변명으로, 그리고 아빠 역할을 하느라 잠시 연락 없다 우연히 들러도 끝내 당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밥을 먹여 보내면서도, 미리 나눠 담가 둔 오래된 그룻들을 양손에 들려 보내면서도 미안해하는 음식.
당신은 정작 제대로 눕지도 않고, 낮잠 10분 들지도 않으면서 다시 주방과 냉장고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허전한 공간 안에 당신 혼자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보냈다 했을 애원하는 사랑의 음식이다.
엄마의 장아찌는 슴슴해서 그 음식이 생명이었을 때를 생각하게 만든다. 묵묵하게 제 할 일 해내면서 아삭하게 명랑하라고, 농축된 지혜로 발효되라고 일깨워 준다.
든든한 배를 쓰다듬으면서 입속 가득 남은 진한 향을 다시 음미하면서 누군가에게 영원히 길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참 잘했구나 스스로 칭찬해 본다. 오십이 넘어서면서 미안해서, 일부러 남매들 앞에서, 아내앞에서 어머니를 '엄마'라고 고쳐, 다시 부르면서 품에 안기기 시작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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