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아요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04

by 정원에

30여분을 더 달려가는 내내 몸집에 비해 자그마했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가지런한 이빨을 살짝 드러낸 채, 입을 반쯤 벌리고 언덕을 올려다보던 얼굴. 뭔가를 말하려는 듯,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누워 있던 고라니였다.

한 줌의 바람에도 귀 끝이 움직일 듯 가볍고 여렸던 생명 하나가 아무 소리도 없이, 거기 있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아침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길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출근길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4차선 도로에서 1차선으로 진입해, S자형으로 휘어진 언덕길을 타고 올라가던 중이었다. 매일 아침 지나가는 길. 별다를 것 없던 출근길. 그런데 앞서가던 파란색 1톤 트럭이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붉은 브레이크등이 번쩍이더니, 차체가 오른쪽으로 크게 휘청였다. 나도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동시에 룸미러를 올려다봤다. 다행히,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평소처럼 차량이 꼬리를 물고 달려왔다면… 단 몇 초만 늦었다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그 사이 트럭은 회전이라기보다는 곡예운전을 하듯 한 번 더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더니, 속도를 높여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검은 배기 연기를 큰 풍선만큼 뿜어내며 사라진 그 자리에 그제야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일방통행 좁은 언덕길에 차량 행렬이 줄줄이 따라오고 있어서 잠깐 멈춘 뒤, 나도 조심스레 살짝 포갠 가느다란 다리를 생각으로 피하면서 지나쳐야 했다. 바로 옆을 지날 때 그 생명의 얼굴을 다시 돌아보고야 말았다.

입을 살짝 벌리고, 젖은 털이 얼굴에 붙은 채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표정. "왜 나를 이렇게 놔두고 가는 거니?" 고라니는 눈을 감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라디오를 틀어도,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줘도 그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차를 갓길에 세웠다. '로드킬'을 검색했다. 몇 개의 번호가 떴다. 그중 가장 위에 있던 번호 1588-2504.


한국도로공사 콜센터였다. 전화를 걸었다. "로드킬 사고 신고를 하려는데요." “어느 고속도로인가요?” 그제야 알게 됐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국도면, 다른 번호를 이용해야 한단다. ‘1333’. 야생동물 찻길 사고 전용 번호. 처음 들어보는 번호였다.

전화를 걸자, "신고자와 가까운 지역으로 연결됩니다."라는 음성이 먼저 흘러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그 생명 하나의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최근 5년 동안 도로에서 발생한 ‘동물 찻길 사고’는 6천 건이 넘는다고 한다. 사고를 당하는 야생동물 다섯 중 네 마리는 고라니라고 한다. 그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얼굴이었다. 내가 오늘 목격한 바로 그 존재.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야생동물의 활동이 늘고, 나들이 차량이 급증하는 5~6월. 시간은 시야 확보가 어려운 0시부터 오전 8시 사이. 내가 그 고라니를 만난 시점과 너무나도 겹쳐 있었다.


한때는 동물의 터전이었을 숲과 들판. 그 위에 우리는 도로를 깔고, 터널을 뚫고, 고속도로를 만들었다. 이제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제야 그 미안함에 동물보호구간, 생태통로, 야생동물 보호 울타리 같은 시설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을까. 내가 그랬듯 놀란 운전자 대부분은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트럭처럼 급히 피하거나, 차마 피하지 못하고 덜컥 밟고 간다. 하지만 나는 한참을 잊지 못했다. 그날 본 고라니의 얼굴을.


내리던 빗방울처럼 조용히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 고라니를 구조할 수도, 살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1333이라는 숫자를 내 휴대폰에 저장함으로써 그 생명과의 짧은 인연을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차를 몰고 다니고 도로 위를 달리고 때론 누군가를 피하지 못하고 스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럴수록 서로를 위한 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도 살고 동물도 사는 길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다 처음 알게 되었다. 2016년 이후 우리나라의 긴급 전화번호는 세 가지로 통합되었단다. 화재·구조는 119, 범죄신고는 112, 그 외 모든 민원은 110. 110을 통해서도 동물 구조 요청이 가능하다고 한다.(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2.10.11.)






[ 알림 ] _ 8월 23일 [ 위대한 시간 2 ]에 작가와 독자를 초대합니다!!

@일정 : 2025. 8. 23(토) 13:00-17:00 (1차 -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

2025. 8. 30(토) 17:00-19:00 (2차 - 온라인)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


@참여방법 : 참가비(1,2차 모두 합쳐 3만 원). 아래 신청링크 클릭

@신청링크 : https://forms.gle/3xgDsqr5VYCuQfpRA

@장소 및 신청기한은 따로 명시하지 않겠습니다.(지난 1월이 경우 너무 많이 모이셔서 부득이하게 온라인으로 참여를 유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청기한은 선착순으로 100분까지만 오프라인, 그 이후는 온라인으로 참여하실 수 있으며 장소도 인원에 따라 변경될 수 있기에 '서울'이라는 것만 알려드리고 차후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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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로 7월 28일부터 30일 연속 글쓰기 중입니다. 30일 뒤에 한 권의 초고를 완성하려는 도전입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라이팅 레시피는 잠시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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