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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하루; 위장된 하루

[ 언어와 나의 세계 ] 61

by 정원에

위대한 하루는 '의식'이 '실천'을 이끄는 날이다. 마치 나의 정원을 설계하고 가꾸는 정원사처럼 보내는 하루다.


나의 가치관, 욕구, 그리고 어제의 부족했던 점을 분명히 인지한다. "오늘은 이 잡초(나쁜 습관)를 뽑고, 여기에 이 꽃(새로운 배움)을 심겠다"는 선명한 자각으로 그 ‘하루’를 시작한다.


위대한 하루는 ‘실제로’ 흙을 만지는 하루다. 생각만으로 살지 않고, 의식적인 노력을 다하는 하루다.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잘 아는 하루다. 그래서 순간마다 더욱 단순한 '노동'이 아닌 '창조'가 된다.

노동의 명확한 이유에 대한 자각은

뚜렷한 창조의 과정에 대한 의식으로,


의식의 명확한 작동에 대한 신뢰가

자신의 설계가 현실이 되는 목격을 자주 하게 되니


삶의 매 순간이 순경(巡更) 일 수밖에 없다.


이런 순경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을 수 있는 것이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위대함이다. 그러니 위대한 하루는 특별한 성취가 있는 날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내는 하루다.

깨어 있으니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니 깊이 보이고

깊이 보이니 쉽게 내미는

유연한 마음을 지니게 되니

친절하고, 다정하고, 나긋하고,

배우 같은 과장된 표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장된 하루는 브레이크를 채워둔 채 가속페달만 밟는 것과 같은 하루다. ‘의식’이 부재한 채 '실천'만 반복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눈을 떴지만 깨어 있지 않다.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부재하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왜 그런지 묻지 않는다.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을 회피하면서 습관이 영혼을 침식한다.

생존은 하되 삶은 순간순간 멈칫거린다.


결국,

위대한 하루는

자신을 향한 책임의식에서 시작되고,


위장된 하루는

자신을 잃어버린 무의식에서 태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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