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은 겉으로는 서로를 소멸시키는 상극의 존재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둘만큼 조화로운 사이도 없다.
물은 불을 꺼트리지만 불은 물을 끓게 한다. 그렇게 불은 물을 증발시키지만, 그 증발이 곧 모든 생명 순환의 시작이다.
현실에서도 관계와 삶은 이와 같다. 물은 불을 통제하며 생명을 지키고, 불은 물을 움직이게 하여 생명을 순환시킨다.
상극이기에 통한다. 등을 맞댄 채 서로를 업고 있다. 전혀 다른 곳을 지향하는 듯 하지만 언제나 함께 간다. 그렇게 극단은 결국 서로의 존재 이유이자 완성의 조건이다.
우리를 살리는 음식은 모두 이 상극이 통한 실체의 정수다.
물은 식재료를 부드럽게 품고, 불은 그것을 각성시킨다. 물만 있으면 삶은 화끈해질 기회를 잡지 못하고, 불만 있으면 타버린다.
냄비 안에서 두 존재가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 생명이 새로운 형태로 깨어난다. 불은 물을 끓게 하고, 물은 불의 격정을 받아들여 재료를 익힌다.
상극은 이렇게 ‘조리(調理)’를 통해 ‘조화(調和)’로 변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 두 극단이 부딪히며 인생이라는 요리(料理)를 완성한다.
맛없는 날은
끓다가 식은 것도,
식다가 익은 것도,
익다가 타는 것도,
타려다 젖은 것도,
젖다가 다시 마른 것도 아닌,
남이 먹다 남은 음식에 기웃거리는 날이다.
그러니,
마음껏 끓었으면 다시 식으면서
충분히 식었으면 다시 끓으면서
흥건히 젖었으면 다시 마르면서
다 마르기 전에 다시 젖어 드는 과정 동안 맛있어 지는 법이다.
결국 상극은 싸움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온도의 대화’다.
불은 물 없이는 파괴할 뿐이고,
물은 불 없이는 정체될 뿐이다.
오늘을 맛있게 산다는 건
그 치열한 ‘온도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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