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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옷걸이; 옷장

[ 언어와 나의 세계 ] 81

by 정원에

옷의 독백; 페르소나의 중력

나는 보여지는 존재다. 세상의 시선과 기대는 오롯이 내 표면에 맺힌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언제나 ‘기다림’이라는 형벌이 따른다. 주차장의 차처럼,


선택받지 못한 시간 동안 나는 축 늘어진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안다. 직립(直立)은 나만의 능력이 아님을. 나의 꼿꼿함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빚어진 허상임을.


그러니 나의 뼈대가 되어주는 그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단옷을 걸쳤다고 우쭐해 말고, 넝마를 걸쳤다고 비굴해지지 마라. 너의 본질은 ‘무엇을 걸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묵묵히 버텨냈느냐’에 있다.”



옷걸이의 다짐; 침묵하는 연대

나는 드러날 필요가 없다. 나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탄력’과 ‘균형’이다. 내가 흔들리면 그대의 세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기대는 그대여, 이것만은 기억하라.


나의 어깨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와 나의 목이 버틸 수 있는 인내심을. 무턱대고 기대기 전에 너의 무게를 먼저 가늠해야 한다.


나는 네가 화려하다고 나도 화려해지고, 네가 초라하다고 나도 초라해지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묻어 들어오는 공기를 통해 세상을 들을 뿐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타인의 가치가 나의 품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겸손의 힘으로부터 나온다.”




옷장의 당부; 거리의 미학

우리는 결국 ‘함께’ 일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러나 맹목적인 함께함은 아니다. 옷은 옷걸이 없이 형태를 잃고, 옷걸이는 옷 없이 소명을 잃으며, 이들이 없는 옷장은 그저 텅 빈 나무 상자일 뿐이니.


그렇기에 나는 명한다. 너의 어깨를 펴라. 그리고 서로의 ‘틈’을 유지하라. 빽빽함은 질식이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구겨지지 않고 서로의 고유한 태(態)를 유지할 수 있다.


“지나침도 부족함도 관계를 해친다. 밀착은 곧 상처다.”



옷, 옷걸이, 옷장.

이 셋의 관계는 우리 삶을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다.


옷은 옷걸이를 통해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옷걸이는 옷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며,

옷장은 그들간의 거리 조율을 통해 ‘욕망’을 관리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옷이 되고, 옷걸이가 되어 주고, 옷장으로 남는다. 그러는 동안 삶이란 서로를 통해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과정임을 알려주고, 알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를 지탱해야 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허락하라! 무너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누군가에게 기대야 한다면, 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뼈를 깎는 그들의 수고를 결코 잊지 말라! 그건 나의 무게를 타인의 어깨에 빚진다는 뜻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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