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하면 우리는 웃어버리자
[ 사유가 머문 자리 ] 8
○•_실패의 미식(美食)에 관하여
잘 구워진 빵 앞에서는 누구나 조용해진다. 그것은 단순히 입안 가득 빵을 오물거리느라 바빠서가 아니다.
완벽함이란 원래 깨지기 쉬운 날계란 껍질 같아서, 타인의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오븐 온도 조절에 실패해 새까맣게 타버린 빵은 식탁의 ‘메인 디시’에서는 탈락했지만, 의외의 훌륭한 ‘안주’가 된다. 미간을 찡그리는 대신, 탄 빵을 가운데 두고 서로의 실수를 씹으며 낄낄거리면 그만이다. 망친 요리는 그 자체로 가장 맛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다.
삶이라는 거대한 오븐에서 꺼낸 결과물이 비록 숯덩이일지라도, 그것을 황급히 쓰레기통에 숨기지 않고 광장으로 들고 나오는 태도.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 “이것 봐, 내가 또 태워 먹었어!”라고 외치는 뻔뻔한 고백 속에 있다.
완벽한 빵은 배를 채우지만, 망친 빵은 적막을 채운다. 그러니 빵이 부풀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의기소침해 할 필요는 없다. 벙그런 빵은 부셔버리기에 마음쓰이지만, 납작해진 망친 빵은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나’의 삶이 축제가 되는 순간은, 금메달을 목에 걸 때가 아니라 흙탕물에 넘어진 채로 서로를 보며 박장대소할 때다. 언제나 완벽해야만 한다는 것은 괴로운 강박이지만, 실패는 이로운 도전이다. 그러니, 망친 빵을 위한 레퀴엠은 (필요)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