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멀어지니 더 사랑이다

[ 내마음 사전 ] 132

by 정원에


거울 앞에 섭니다. 흰머리가 늘고 눈가에 주름이 잡힌 내가 보입니다. 예전 같으면 그 주름 하나하나를 세며 아쉬워 하고, 안타까움에 한숨 쉬었을 텐데, 이제는 거울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를 바라봅니다.


그러자 주름은 흐릿해지고,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한 사람의 온화한 표정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몸이 나이 들수록 ‘원시(遠視)’가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조물주가 주는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싶어지거든요.

“이제는 너무 낱낱이 파헤치며 아파하지 말거라. 뾰족한 것들은 적당히 뭉개서 보고, 모난 것들은 흐릿하게 보듬으며, 그저 전체적인 풍경으로 삶을 사랑하거라.”


젊은 날의 눈은 성능 좋은 '접사 렌즈' 같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 박혔습니다. 타인의 사소한 눈빛 하나가 내 하루를 뒤흔들었고, 부족함이라는 작은 티끌이 태산처럼 거대하게 보여 잠 못 이루곤 했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사랑도 데일 듯 뜨거웠고, 이별도 베일 듯 날카로웠습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의 썩은 옹이 하나에 매달려 울었던 겁니다. 그 옹이가 내 삶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눈이 침침해지고 팔을 뻗어 세상을 보게 되니, 옹이는 보이지 않고 울창하고 푸르른 숲의 능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억지로 줌을 당기던 나에게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광각 렌즈’를 선물하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글자를 읽으려 무심코 팔을 쭉 뻗는 내 모습을 보며 깨닫습니다.


이제는 세상과, 사람과, 그리고 나 자신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비로소 본질이 보인다는 것을요

인간관계도 그러했습니다. 너무 꼭 붙어 있어 서로를 찌르던 가시 같은 관계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바라보니 비로소 서로의 외로움이 보이고,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이 안쓰러움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맹세컨대, ‘에겐남’이 되어서만은 아닙니다. 그래요. 물리적인 시력은 약해졌을지 몰라도, 마음의 시력은 이제야 제 초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작은 흠집에 베이지 않는 무던함, 날 선 비난을 둥글게 흘려듣는 여유, 그것은 내 눈이 내게 가르쳐준 ‘거리두기의 미학’인가 봅니다.


오늘도 나는 책을 멀리 떼어놓으며 생각합니다. 글자도, 사람도, 근심도. 내 품에서 조금 떠나보내야 비로소 그 참모습이 빛난다는 것을.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흐릿해진다는 건, 전체를 품게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인가 봅니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젊음은 돋보기로 삶을 들여다보며 불을 지피는 시간이었고, 나이 듦은 망원경으로 삶을 관조하며 별을 헤아리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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