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 이야기속으로 ] 13
병원의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쏟아지는 소독약 냄새는 늘 서늘했다. 10년을 함께한 '루'의 발톱이 미끄러운 타일 바닥 위에서 ‘착착’ 소리를 낼 때면, 그 소리는 내 심장박동과 묘하게 박자를 맞추곤 했다. 얼마 전 6개월 뒤의 정기 검진을 예약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우리 사이의 시간은 그저 정해진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안온할 줄 알았다.
며칠 전 아내에게 걸려온 수의사 강 박사의 전화는 그 궤도를 이탈하게 만드는 작은 돌멩이였다. 6개월 뒤 자신이 이곳에 없을 것이니, 루의 식단과 관절 상태를 각별히 챙기라는 당부. 그의 목소리는 수술용 메스처럼 예리하면서도, 낡은 벨벳 천처럼 부드러웠다고 아내는 전했다.
나는 오늘, 루의 사료를 산다는 핑계로 병원 대기실 구석에 앉아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10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가 환자를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방식에 집중했다.
그는 유독 손을 자주 씻었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 그의 뒷모습은 단순히 위생을 위한 행위라기보다, 손끝에 남은 생의 온기나 혹은 죽음의 서늘함을 씻어내려는 의식처럼 보였다. 그의 흰 가운 소매 끝단은 반복된 세탁으로 얇아져 투명할 지경이었다.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붙잡으려 애썼던 시간의 마모였다.
그의 눈은 루와 같은 노견들을 바라볼 때 깊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연민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멈출 시계'를 매일 태엽 감듯 돌려주어야 하는 자의 피로감에 가까웠다. 10년 전, 처음 루를 맡겼을 때 그의 눈빛은 팽팽한 활시위 같았으나, 지금의 눈빛은 비가 그친 뒤의 웅덩이처럼 고요했다. 그는 왜 떠나려는 걸까.
그의 책상 모퉁이에는 오래된 다육 식물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잎 하나가 툭 치면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떼어내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그 마른 잎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고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버티는 이들을 배웅하는 일에 자신의 영혼이 너무 얇아졌음을, 그는 스스로 감각하고 있었다.
진료실 안에서 보호자들과 나누는 대화는 건조했지만, 그 문장 사이사이의 공백은 다정했다. 그는 <괜찮을 겁니다>라는 무책임한 희망 대신, <오늘 산책은 조금 천천히 하셔도 좋겠네요>라는 구체적인 일상을 건넸다. 그것은 그가 퇴사 후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복선 같기도 했다. 치열한 사투의 현장이 아니라, 그저 천천히 걷는 이들의 보폭을 맞추어 주는 삶.
그는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는 일에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자신의 슬픔이 어디에 고여 있는지 잊어버린 듯했다. 그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루의 안부를 미리 당부한 것은, 자신이 떠난 뒤에 남겨질 ‘기억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그의 마지막 배려이자, 완벽한 퇴장을 위한 매듭이었다.
갈등은 병원 밖 세상과 그의 내면 사이에서 조용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병원장은 그를 붙잡으려 숫자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을 것이고, 그는 그 숫자들이 채워줄 수 없는 가슴 속의 빈 칸을 응시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칼 대신 흙을 만지거나, 기계음 대신 바람 소리를 듣는 곳으로 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관찰을 마치고 일어서는 내 눈에,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작은 강아지의 꼬리짓이 들어왔다. 강 박사는 그 꼬리짓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작별의 슬픔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행자의 설렘을 닮아 있었다.
6개월 뒤, 그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루는 다른 수의사를 만나게 될 것이고, 우리도 새로운 루틴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내에게 남긴 전화 한 통은, 루의 혈관 속에 흐르는 약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심어진 따뜻한 신뢰의 씨앗이었다.
그는 아마도 어느 이름 모를 시골길에서, 혹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길목에서, 자신이 고치지 못한 상처들을 하나씩 치유하며 걷고 있을 것이다. 그의 퇴사는 끝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향한 가장 용기 있는 첫 걸음일 거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