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은 땅을 치고 올라오는 회복의 탱탱볼입니다.
20년의 마지막 날 1시가 넘어서 눈을 떴습니다. 저는 요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것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SNS를 둘러봅니다. 벌써부터 20년을 아쉬워하고 21년을 기대하는 싱숭생숭한 마음이 SNS에 넘쳐흐릅니다. 그저 365일 중에 하루일 뿐인데 왜들 이렇게 유난을 떠는지 모르겠다며, 태연하게 마음을 먹으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놉니다. 왠지 모르게 괜히 두근거립니다. 새해가 오면 카운트 다운하는 게시글과 새해를 맞이하는 이야기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신년 인사들이 손전화를 시끄럽게 울릴 것입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글로 남기는 글쟁이니까,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연말연시 뒤숭숭한 마음을 글로 남겨봅니다.
19년부터 자주 찾았던 단골 카페의 SNS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3시까지 문을 연다고 합니다. 지난밤 새해를 맞아 가게도 늦게까지 꾸몄다고 합니다. 오늘 문을 열고서 또 언제 문을 열지 모릅니다. 열고 닫는 모든 것이 사장님 마음이니까요. 31일의 뒤숭숭한 마음에 괜히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어서 씻지도 않고 옷을 챙겨 입고서 밖으로 나옵니다. 집 앞 계단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서 카페 사장님 SNS에 DM을 보냅니다.
"저 지금 모자 쓰고 나갑니다."
그리곤 바로 카페로 뛰어갑니다. 손가락이 너무 시려서 옷 안으로 쏙 숨겨봤습니다. 마스크의 가득 찬 습기가 차가운 얼음이 되려다 뜨거운 날숨에 녹아 그저 축축하게 젖어옵니다. 트랙에서 뛰는 것과 달리 일반 길 위에서 달릴 때면 인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조심조심 부딪히지 않게 뛰면서 속도를 줄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걸어가는 어르신들은 '왜 저놈은 추운 날 유난을 떠냐고' 속으로 생각하시겠지요? 빨간불 신호에 드디어 멈춰 섰습니다. 속도를 줄인 것이 아쉽지만, 한편으로 감사합니다. 잠시 숨을 고릅니다. 10여분 달려가다 보면 카페가 보입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앞을 지나갑니다. 복싱 영화를 보면 오토바이 뒤를 뛰면서 러닝을 하던데 어떻게 하는 거지? 생각하다 카페에 도착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는 액션을 선보입니다. 커피 한잔 먹으러 여기까지 오는 손님이 어딨냐며 괜시레 으스대 봅니다. 그런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스위트하다며 맞춰주는 착한 사장님 덕분에 기분이 좋습니다.
숨을 고르면 메뉴판을 보며 메뉴를 고민해 봅니다. 하지만 메뉴는 언제나 따뜻한 아메리카노입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를 주문했는데, 나의 주머니를 보시고는 원두 드립 팩을 4개나 챙겨 주십니다. 크림치즈 크렌베리 쿠키는 덤입니다. 맛은 어떨지 몰라도 진하기는 엄청 진하다며 뜨거운 물로 농도를 맞추라고 조언해주십니다. 코로나 3단계 격상 이후에는 카페에 손님이 앉아 있을 수 없으니 모르긴 몰라도 매출이 엄청 급감했을 것입니다. 10장 넘게 모은 쿠폰을 쓰려고 했지만 그냥 계산했습니다. 12~3시까지 문을 열며 손가락 개수보다 적은 손님 중에 쿠폰을 사용하는 손님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쿠폰은 21년에 쓰겠습니다!
20년은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전염되는 질병이 퍼지고 나니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일들이 모두 제한됐습니다. 언제나 힘든 시기를 함께함으로 이겨냈던 우리에게 너무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와중에 어려운 마음을 고치는 것도 사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우리는 헤어져있는 시간만큼 만남의 소중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함께하는 1분 1초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만남으로 고통받은 만큼 만남으로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삶을 포장하려 해도, 20년도의 우리들은 모든 방면에서 떨어지는 한해였습니다. 의료계의 모든 분들은 코로나의 최전방에서 오늘까지도 싸워주시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취업시장은 오늘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었고, 자영업자분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의 학생들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종교계도 갑작스러운 변화와 여러 사건들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20년을 꽉 쥐고 하늘 저 끝에서 땅으로 집어던진 것 마냥 빠르게 곤두박질쳤습니다.
우리의 삶이 딱딱한 돌멩이라면 땅속에 깊게 처박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인생을 탱탱볼이라 생각해봅시다. 어떻습니까? 떨어지던 이미지의 20년이 이제 탱탱볼의 옷을 입고 밑바닥에서부터 하늘 위로 솟아오르지 않습니까? 돌멩이를 땅에 던지고는 다시 튀어 오를 기대를 하지도 않습니다. 던지고 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탱탱볼은 던지고 나면 다시 올라올 것을 기대하고 지켜봅니다. 튀어 오를 때 다시 낚아채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20년이 힘들었던 만큼, 급하게 떨어졌던 만큼 우리는 다시 뛰어오를 것입니다. 보다 높이보다 빠르게!
21년은 땅을 치고 올라오는 회복의 탱탱볼입니다. 21년에는 당당하게 10장 모은 쿠폰을 쓰겠습니다.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20년도 고생 많았습니다. 정말 한 게 없다고 하지만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20년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제 최악의 20년이라는 악명은 그림자 너머로 보내줍시다. 보세요 21년의 해가 떠오릅니다.
이중에 나와 함께 20년을 보낸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대 덕분에 제가 21년의 해를 봅니다. 이 글은 저의 신년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