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나의 손은 시리지 않지만

차가운 바람에 생각해본 어느 날

by 김가든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한양수정아파트에 이름 난 장난꾸러기였다. 213동 놀이터와 203동 놀이터를 아지트로 삼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며 친구들과 뛰놀았다. 포켓몬스터, 디지몬, 이누야샤 역할극을 하고, 고운 모래 아래에 묻힌 축축한 모래를 단단히 뭉쳐 주먹밥을 만들기도 했다. 나뭇잎을 빻아서 약국 놀이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추운 겨울에는 콧물이 말라 붙어서 코 주변이 하얗게 되기도 하고, 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겠다며 손톱 밑에 항상 모래를 키우기도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라이터를 주워서 불장난을 하기도 했고 불씨가 튀어서 사촌누나한테 물려받아 입고 다니던 검은색, 주황색 조합에 패딩에 구멍이 나기도 했다. 손이 꽁꽁 얼고 뺨 가죽이 아려와도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다는 사실에 해는 언제나 우리들보다 먼저 집에 들어갔다.


치과치료와 은행 방문, 토익 서적을 구매하기 위해 코로나 시국에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외출 전 날씨 확인은 필수이기 때문에 영하로 떨어지는 온도를 확인하고는 히트텍을 챙겨 입었다. 도톰한 베이지색 패딩과 내가 절대 안 신는다고 가방에 넣지 마라고 했던 길쭉한 양말을 꺼내 신었다. 이 양말을 볼 때마다 그때 대구에서 이거 안 챙겨 왔으면 어쩔뻔했나 싶다.(추석에 구멍 난 체육복 바지도 꿰매 주어서 고맙습니다 할머니) 잘만 당기만 종아리까지 덮을 것 같은 이 검은 양말이 올겨울 아주 효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꽁꽁 싸매고 나왔는데도 차가운 바람은 나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처 숨기지 못한 귓바퀴를 집중 공격하며 나의 손가락도 냉동 소시지처럼 얼려버리려 한다.


차가운 바람에 지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불편함을 피해왔다. 더운 날 밖에서 뛰놀기보다는 이제는 시원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긴다. 추운 날에는 굳이 밖으로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한다. 확실히 나의 손에는 더 이상 모래알이 묻지 않고, 내 뺨 가죽도 매일 발라대는 스킨로션 탓에 반질반질하다. 하지만 몸이 편안함을 찾은 만큼 마음도 편안해졌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어른이 되고 더 이상 더위와 추위와 직면하기보다 다양한 방법들로 그것들을 피해 가며 편안함을 얻었지만 마음은 더위와 추위보다 더 힘겨운 환경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학점, 취업, 연봉, 졸업, 공기업, 토익, 한국사, 자격증, 면접, 자소서, 대기업, 투자, 경쟁, 보험, 주식, 결혼, 통장, 청약, 주택, 월세, 세금... 어지럽게 나열한 모든 단어들이 나의 마음에 어느새 숲을 이루었다. 분명 나의 무릎까지도 안 오던 것들인데 더위와 추위를 피해 살아가다 보니 이 녀석이 자라나기 퍽 좋은 환경을 선사했나 보다. 나는 요즘 깊게 뿌리내린 이것들 때문에 종종 발이 걸려 넘어지고, 하늘을 빽빽하게 매운 나뭇가지들 덕분에 태양을 구경도 못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아마 아직 진짜 추위는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겨울철에는 몸이 잔뜩 움츠러들어 있어서 여름과 똑같이 넘어져도 크게 다친다. 진짜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몸의 긴장을 이완해야겠다. 한 여름 더위에 삼계탕집을 찾아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것처럼 21년에는 한 여름에 더위에 더욱 부딪혀 봐야겠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리고 당장 이번 겨울에는 한양아파트 장난꾸러기 시절로 돌아가 봐야겠다. 추위를 두려워하며 피하기보다 그 속에 있는 즐거움을 찾아 추위를 돌파하던 그날의 나에게 배워야겠다. 온 동네를 누비며 친구들과 웃음소리를 퍼트리던 10대 소년처럼. 그래야 나도 나의 숲에서 넘어지지 않고 걸으며, 하늘 구경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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