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1월 26일 금요일 밤 집으로 가던 길
차가운 바람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면 어느새 겨울이 온 것이 확실합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목사님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래 살았던 동네에 아직 가보지 못한 식당이 있습니다. 일식 튀김을 판매하는 집인데 마포에 본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에 모든 튀김을 밥 위에 얹어주는 일반적인 텐동 집과 다르게 여기는 밥과 튀김이 따로 나옵니다. 튀김은 2번에 걸쳐 나오기 때문에 계속 따뜻하고 바삭한 튀김을 먹을 수 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밥 한 공기 추가했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습니다. 배가 너무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음식점을 나와서 쌀쌀한 골목을 걷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속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찹쌀떡~ 찹쌀떡~ 찹쌀떡~"
찹쌀떡 장수의 우렁찬 목소리입니다. 추운 겨울에 얼마나 파셨을까요? 목사님이 12개들이 찹쌀떡 2팩을 사고는 저에게 하나를 건네줍니다. 많이 파셨으면 좋겠습니다. 곧장 자주 가는 카페로 갔습니다. 목사님은 찹쌀떡 하나를 카페 사장님에게 후하게 건네줍니다. 찹쌀떡을 싫어하셨던 걸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미진 골목 구석에 자리한 카페에는 맛 좋은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이 계십니다. 가게 안에 커다란 기계가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커피콩을 볶습니다. 사장님은 옆에 앉아 커피콩을 보며 무언가를 기록합니다. 맛있는 메뉴가 너무 많아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다 차가운 커피 샤벳 위에 믹스베리 크림이 올라가는 메뉴를 주문하고는 짧은 수다를 나눴습니다. 목사님은 먼저 자리를 뜨시고 나는 혼자 남아 잠언 4장을 필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이어리에 끄적입니다. 다행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나는 글쓰기를 멈출 것인데, 아직 내가 작은 것을 보고 듣고 쓸 마음이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금요철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나의 공허한 마음 불안한 마음 외로움, 그리움, 그 모든 것 한데 모여있는 그 더러운 구덩이를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귀갓길 바람은 더욱 차갑습니다. 좁은 인도 위에 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이 이리로 저리로 걸어갑니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고는 술에 많이 취한 걸까? 참 위험하네 생각합니다. 나의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길을 비켜드리고는 살짝 목례를 합니다. 작은 자전거지만 끌고 가는 아주머니에게서 힘이 느껴집니다. 작은 강아지를 보고 귀여워 미소를 짓습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담배를 태우며 강아지를 보고 웃음을 지으시다 나랑 눈이 마주치고는 웃음을 거두십니다.
아저씨를 지나 걸어가는 나는 앳된 모습의 남녀 무리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그 무엇도 눈치 보지 않고 인도를 웃음으로 가득 채웁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웃음도 먹는 걸까요? 웃음을 감추던 중년의 아저씨와는 대조적입니다. 요즘 임대를 내놓은 가게들이 많이 보입니다. 가게를 깨끗이 비우고 A4용지에 "임대" 두 글자와 11자리 전화번호 새겨놓고는 가게 유리창에 붙이는 사장님은 무슨 마음일까요?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깨끗이 비워내 본 적이 없습니다.
찬바람에 가로수들도 이파리를 모두 떨굽니다. 그들도 비워내는 것이겠지요. 다시 채우기 위해서 나만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비워가는 것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사뭇 다른 모습의 대조가 강조를 불러옵니다. 나는 욕심쟁이인 걸까요? 아직 이파리를 가득 달고 있는 노란 은행나무가 보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욕심이 많은 걸까요?
참 다행입니다. 매일 같이 있을 귀갓길에 오늘은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