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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 번째 이야기

by 은서아빠

전 특수부대를 전역한 후 구조 특채 시험을 응시해 지금은 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방공무원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패기도 있었고 “나는 강하다”, “사람은 강하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근데 구조대원으로 사고 현장에 출동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는 걸 자주 보다 보니까 사람은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거 같아요.

구조대원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사망사건을 경험하다 보니 지금은 첫 사망사건이 무엇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거 같아요. 워낙 많이 겪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몇 개 있긴 해요.

첫 번째는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남성분 손목을 같이 출동한 직원이 잡고 있었는데 그걸 뿌리치고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자살시도 구조 출동을 나가서 실질적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직접 본 경우라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은 교통사고였는데.. 트럭이 자전거 타고 가던 중학생 아이를 치고 갔었거든요. 그 현장에 아이 엄마와 할머니가 왔는데.. 엄마가 죽어있는 아이를 잡고 울고 있는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거 같아요. 그리고 한 번은 아들이 지게차로 후진을 하다가 아버지를 쳐서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냥 단순하게 죽은 건 기억에 남아도 크게 와닿지는 않는데.. 가족이 연관된 사건이나 가족이 현장에 있거나 가족으로 인해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더 안타깝기도 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구조대원은 인명검색을 위해서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 먼저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불안감, 이 건물이 붕괴될 수 있다는 불안, 이런 것들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출동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는 처참한 광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사람이 죽어 있지만 어떻게 죽어있는지에 따라 다가오는 부담감이 다양하거든요. 시신의 훼손이 심하거나 부패 정도가 심하거나 하면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더 부담이 되죠. 그리고 저희는 그것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시신을 접촉하고 수습해야 하는 입장이니깐요.

저는 처음에는 사망 현장을 자주 보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사망 현장에 들어가서 봤어요. 굳이 안 봐도 되는데 이런 것도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깐 현장에서 봤던 충격적인 모습들이 저도 모르게 조금씩 스트레스로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기억이 좋은 건지 사고 현장 주변만 가면 그때 상황이 정말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나거든요.

그래도 막상 출동 현장에서는 괜찮아요. 내가 어떻게 구조를 하지, 무슨 장비를 써야 하지 이런 부분을 많이 신경 쓰는 거 같아요. 이걸 빨리 처리 하자라는 생각으로 일에 집중하다 보니 시신이라든지 주변 상황에 대한 신경을 덜 쓰는 거 같아요. 근데 이제 현장 정리를 하고 돌아오면서 조금씩 생각이 나거나.. 항상 생각이 나요. 그런 사고들이.. 트럭에 치인 중학생 얼굴이 지금도 떠올라요. 그때 그 사건이 툭툭 떠올라요. 가만히 있다가도..

구조 출동을 다니면서 자주 든 생각 중 하나는 “내가 구조장비 하나를 잘 못 사용할 경우 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한 거 같아요. “아 내가 현장에서 잘못해선 안 되겠구나” 그래서 항상 현장 나갔다 들어오면 당시 그 상황에서 최선책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팀원들과 같이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저희가 인명을 구조하는 직업이지만 내가 조금만 실수하면 상대방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도 있겠다. 그건 나한테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거 같아요.

구조대원으로 일한다는 게 쉽지는 않죠 힘들기는 해도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 버티게 해주는 거 같아요. 가족들이 저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가족 다음으로 오래 생활을 하는 팀원들이 저에게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저희 업무가 팀에 많이 의지하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팀워크.. 팀원들과의 관계가.. 하나의 원동력인 거 같아요.. 팀원들로 인해 스트레스도 빨리 풀 수 있고..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원동력인 거 같아요. 저희 팀 같은 경우는 운동도.. 산행도 많이 같이 하거든요.. 같이 서로 알잖아요.. 서로 힘든 부분이 뭔지.. 말을 안 해도 공유가 되고. 공감도 되고.. 현장 다녀오면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서.. 그때.. 힘들었다.. 그때.. 보기 안 좋았다.. 이런 이야기 하면서 많이 푸는 거 같아요.. 같은걸 공유했던 사람들이니까. 공감 형성도 잘되고 하는 거 같아요.


"분신을 한 사람인데 지하 1층에서 저희가 꺼내오는데 완전 다 탔거든요.. 되게 좁은 계단으로 사람을 들고 나오는데 거의 다 나와서 얼굴이 딱 보이는 거예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까.. 저는 맨 처음에 이것도 공부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사망 현장을 들어가서 봤어요. 굳이 안 봐도 되는데 이런 것도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것도 공부가 되겠지 근데 대장님들은 다 안 보시더라고요. 그게 누적이 될지는 몰랐어요. 근데 그게 저도 모르게 조금씩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기억이 좋은 건지 사고 현장 주변만 가면 그때 상황이 정말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나요." - 구조대원과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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