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먹지 않는 도시락
벌써 첫 등교날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 것도 있다.
아침은 분주했다. 전날 준비를 잘해두었다고 생각했지만 둘째 도시락 싸는 일은 서툴기만 했다. 마침 일본 연휴라 아이들 등굣길은 신랑이 맡았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는데 신랑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메시지 창을 여니 학교 정문 앞에 어색하게 선 아이들이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넣고 다시 집안 청소를 했다. 집으로 돌아온 신랑과 아이들 이야기를 나눴다. 설렘과 기대, 걱정이 오고 가는 대화였다. 신랑이 큰 아이의 하교 시간을 물었고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학교 안내 메일을 다시 열어 확인했다.
- 11시 40분 하교니까, 같이 점심 먹으면 돼.
우리는 큰 아이가 하교를 하면 같이 점심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신랑은 집 근처 식당에 나가서 먹자고 했고 나는 집에서 먹자고 했다. 그때 신랑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신랑은 번호를 확인하더니 큰 아이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신랑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런 신랑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쿵, 크게 내려앉았다.
- 오후 수업이 있다는데?
큰 아이가 오후까지 수업이 있다고 했다. 놀란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아이는 오후까지 수업을 들어야 하니 늦을 거라고 했다. 다급하게 점심밥을 갖다 주겠다고 했지만 아이가 전화를 끊었다. 학교 안내 메일과 첨부 파일을 열었다.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11시 40분 하교. 틀림없이 적혀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붙잡고 문서를 위에서부터 다시 천천히 읽었다. 그제야 문서에 적힌 날짜가 보였다. 2023년 9월. 학교 직원이 우리에게 보내준 일정표는 23년 9월, 지난 학기 첫 등교날의 시간표였다. 내가 도시락을 싸서 지금 학교로 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중학교 캠퍼스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큰 아이는 핸드폰을 껐고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신랑이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도시락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아이가 원치 않으니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뒤, 입학 담당자에게서 실수를 해서 미안하다는 메일이 왔다. 하교 시간까지 기다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애가 탔다.
- 배고팠지?
하교한 큰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했다. 긴장하면 그럴 수 있지,라고 대꾸하면서도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 걱정을 읽었는지 아이는 같은 반에 한국 친구들이 있었고 종일 자신을 도와줬다고 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들에게 당장이라도 달려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 엄마, 내일 도시락은 간단한 걸로 싸주세요. 삼각김밥 같은 걸로요.
늦은 저녁, 도시락 준비를 하는 내게 큰 아이가 말했다. 나는 다음 날 아이의 바람대로 삼각김밥을 싸주었다. 하지만 큰 아이는 내가 싸준 도시락을 집에 돌아와 먹었다. 놀란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학교에서 배가 고프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점심시간엔 무얼 했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로비에서 책을 읽었다고 답했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조용히 삼켰다. 다음날은 주문한 보온 도시락통이 와서 따뜻한 밥을 싸 주었다. 그날도 큰 아이는 하교 후 집에서 도시락 통을 열었다. 보온 도시락에 담긴 밥이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역시나 학교에서는 배가 고프지 않아 먹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락을 열어 허겁지겁 먹는 아이는 배가 많이 고파 보였다. 나는 조금 큰 목소리로 내일은 꼭 도시락을 먹고 오라고 했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날도 아이는 도시락통을 그대로 집에 들어와 거실 식탁에서 먹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어 달라고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했다. 아이는 또 고개만 끄덕였다. 금요일에도 아이는 도시락을 아침에 싸준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도시락을 들고 학교 식당으로 이동해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반 아이 몇몇이 같이 먹자고 했지만 그 친구들을 복도에서 놓쳤다고 했다. 큰 아이는 아이들을 쫓아 낯선 식당으로 가는 것보다 혼자서 굶는 것을 선택했다. 같은 반 아이들이 말을 걸어주지 않은 날은 또 그런 이유로 로비에서 혼자 책 읽는 것을 선택했다. 친절하고 좋아 보였지만 낯선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 용기를 내는 것보다 굶는 것이 아이에게는 더 편안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아침 등교 때마다 나는 도시락을 건네며 애원하고 부탁하고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신신당부를 했다. 밥은 먹고 와. 남겨도 되니까 도시락통 뚜껑은 열어봐. 아니, 제발 굶지는 말아 줘. 하교한 아이가 집에 들어오면 도시락부터 물었다. 오늘은 먹었어? 어땠어? 그러면서 점점 도시락 싸는데 열을 올렸다. 아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어 도시락 뚜껑을 열어볼지 알기 때문에 더 잘 싸주고 싶었다. 아이가 뚜껑을 열었을 때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점점 내 욕심으로 변질되었다. 아이가 도시락을 먹지 않을수록 반찬 수도 늘어 갔다. 마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맛있는 도시락을 싸주는 일밖에 없다는 듯이.
도시락통 하나 열어보지 못하는 아이가 답답하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답답한 것은 나였다. 아이가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마스크를 벗고 밥 먹는 일을 어려워한다면, 그런 아이를 위해 한입 크기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도시락을 싸줬어야 했다. 도시락 먹었어? 라든가 오늘도 안 먹은 거야?,라는 말은 아이로 하여금 내게 미안함을 갖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무거운 도시락이 아이의 마음까지 무겁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점점 더 무거운 도시락을 만들어 댔다. 엄마가 도시락을 어떻게 싸주면 네가 편할 것 같아?라고 물어봐주었더라면 조금 더 가벼운 도시락을 만들어 건넸다면, 아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이주일이 넘어가면서 아이가 도시락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밥통만 열었는지 반찬통은 그대로 다시 들고 오기도 했지만, 도시락 통을 열고 낯선 공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아이를 생각하면 기특하고 기뻤다.
그렇게 내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도시락에만 온갖 신경을 다 쏟는 사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