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고 일어나고
저는 아이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가 혼자서 해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당부의 인사말 뒤에, 사실은 번역기를 사용해 이메일을 쓴다는 고백을 덧붙였다.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고 보니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등교 첫 주, 금요일 저녁의 일이다. 저녁을 먹고 사회 과목 숙제를 하던 큰 아이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아이를 향해 서기도 전에 가슴이 조금 내려앉았다. 나는 아이를 향해 돌아서서 눈 마주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움직여 말을 이었다.
- 저, 내일, 학교, 안 가면, 안 돼요?
아이는 말하기조차 힘이 드는 듯,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너무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 학교는 가야지.
그 말과 동시에 아이는 그대로 무너졌다. 분명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새인가 거실 바닥으로 흘러내려가 있었다. 아이는 갓난아이가 된 듯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 큰 아이가 그렇게 우는 것은 갓난아기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일으켜 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눈물에 젖은 아이의 몸은 무거웠고 방어적이었다. 하는 수없이 한참 동안 아이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분이 지나고 아이에게 물었다.
-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이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젖은 그 두 눈으로 나와 신랑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보류하고 다시 물었다. 학교에 안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아이는 대답 대신 원망의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해.
내 말에 아이가 또 크게 무너졌다. 아이에게 그래, 그럼 내일 하루는 쉴까, 말할 수가 없었다. 걱정과 기대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둘째가 있었고 한 번의 수락이, 아이들에게 강렬하게 남아 또다시 이런 사태가 벌어질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학교는 가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울고 있었고 둘째는 실망한 얼굴로 거실을 구석을 지키고 있었다. 큰 아이를 달래도 보고 큰 소리도 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는 계속 큰 소리로 울었다. 아니 울부짖었다.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하는 아이였다. 선생님들의 말씀을 법으로 알았고 규칙이나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는 법이 없었다. 융통성이라든가 유연함 같은 것은 아이와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쪽지 시험을 본다고 하면 스스로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하는 활동은 뭐든 잘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큰 아이에게는 공부를 하라거나 숙제를 하라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볼 때마다 기특하고 신기한(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였다.
- 사회, 숙제가, 너무, 어려워요.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입 말했다. 숙제가 너무 어려워서 지금부터 밤을 새도 자신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돕겠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와 신랑은, 지금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뻔하고 흔한 말로 아이를 위로하려고 들었다. 아이는 그 흔하고 뻔한 말을 거부했다. 그러면 학교 선생님에게 도움을 구하자고 했다. 아이는 용기가 없다고 했다. 나는 학교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곳이고, 선생님들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학생보다 솔직하게 모른다 말하고 질문하는 학생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진짜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렇고말고,라고 대답하면서 동시에 이 말이 통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엄마가 선생님한테 이메일을 쓸게.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지금은 해가는 숙제들이 많이 부족해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해 볼게.
그제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서툴지만 성실하게 숙제를 했다. 정말 모르겠는 것은 내일 학교에 가서 질문을 하기로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모두가 잠든 밤, 노트북을 열었다. 메일창을 열고 번역기 화면도 옆에 열어 두었다. 아이의 담임이자 사회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께 메일을 썼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눈은 많이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아이가 마음을 바꿔 어젯밤처럼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아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에게 메일을 썼노라고 고백을 했다.
- 엄마가 영어를 잘 못해서 번역기를 썼다는 고백도 했어. 그래서 너에게 큰 도움을 못 주는 상황도 설명하고.
아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아침밥을 먹고 등교 준비를 했다. 책가방을 메고 새 마스크를 꺼내 쓰고 현관문을 나섰다. 뒤돌아보는 일 없이, 학교를 향해 갔다.
그날 오후 담임에게서 답장이 왔다. 담임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학교 시설과 반 친구들을 알아가는 것이 지금 할 일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했다. 또 사회 수업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도. 그 말 끝에 아이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아이가 사회 수업 시간에 같은 조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알려주었다. 종일 걱정만 하고 있던 나와 달리, 또 쉬운 말을 쉽게 내뱉은 나와는 달리 행동으로 옮긴 큰 아이의 행동들이 믿지 않았다. 아이는 그 짧은 사이에도 성장하고 생기를 되찾는구나, 감탄했다. 담임의 메일을 아이가 하교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읽을수록 따뜻하고 감동적인 메일이었다.
하교한 아이는 담임의 말처럼,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이가 식탁에 앉아 마스크를 벗고 도시락을 꺼냈다.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먹으며 말했다.
- 오늘, 선생님하고 친구들한테 말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지금 내가 알아야 할 것은 학교 식당이나 강당, 과학실 같은 위치를 아는 거래요. 어차피 지금 제가 하는 숙제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아신대요.
나는 어느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담임의 따뜻한 말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아이가 놀라운 일을 하고 온 만큼, 나도 잘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냈다. 아이 등을 어루만지며 높은 톤으로 들뜬 큰 소리를 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엄지도 만들어 내보였다.
- 잘했어. 도움을 청하는 일은 정말 멋진 거야.
아이가 어제와 달리 빛나는 얼굴로 입에 든 음식을 씹었다. 아이는 어제와 달리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둘째가 울먹였다.
아이들 숙제는 걱정했던 것보다 어려웠다(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은 내게는). 초등 3학년 과정의 둘째 아이 과제는, 긴 본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것이었는데 비슷한 단어를 찾는 것이나 접속사 찾기, 빈칸 채우기, 문단 요약하기 식의 문제들이었다. 한두 문제가 꼭 어려워 나를 난처하게 했다. 답을 알 수가 없으니 아이와 함께 고민해 답을 적고도 자신이 없었다. 아이는 그런 걸 놓치지 않고 알아차렸다. 처음엔 내 말을 잘 따라오던 둘째였는데 점점 날이 지날수록 내 말을 의심하고 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둘째와 숙제를 할 때마다 두배로 애를 먹었다.
중학교 과정에 있는 큰 아이는 과목별로 과제가 있어할 일이 많았다. 특히 과학 숙제는 번역기를 이용해도 낯선 한국어가 나와, 그 의미를 찾아 헤매야 했다. 용어 해석이 어려울 때면 그 분야에 있는 지인들이 생각나 연락을 해보기도 했는데 되돌아오는 답들은 한결같았다. 챗GPT를 이용해 보라는 것.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옛날 사람이구나 싶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나는 먼저 관련 책을 찾아 읽고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은 알만한 사람을 찾아 묻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해온 방법이었다. 하지만 영어로 모든 걸 풀어내야 하는 지금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무얼 해도 나는 무능력해 보였다.
매일 저녁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과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같이 숙제를 했다. 둘째 아이 숙제를 먼저 하고 그다음 큰 아이 숙제를 하는 식이었다. 둘째 아이 숙제도 어려워 쩔쩔맬 때면 젊은 때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감사하게도 그 짧은 사이에도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둘째가 나의 답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한 숙제가 하나 둘 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난감했다. 그러나 별 수 있나, 나는 계속 인터넷 사전과 지인들의 추천대로 챗GPT를 활용하며 숙제를 도왔다. 아이들과 인터넷 사전 검색은 같이 했지만 챗GPT 번역은 나만 보았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챗 GTP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기에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다. 나는 챗GPT로 번역본을 읽더라도 그 내용을 아이들과 공유하진 않았다. 아이들이 해석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뿐, 이 문장은 이런 뜻이야 라고 알려주진 않았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해석하면 좋을까,라고 묻고 아이가 대답을 하면 그 대답을 번역본과 비교하면서 숙제하는 것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