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에서 잠깐 아름다웠던
둘째 캠퍼스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사무실 직원이나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마트폰을 열어 파파고를 열었다. 현관문이 열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무실 직원이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는 집에 돌아갈 모든 준비를 마친 모습이었다. 퉁퉁 부은 눈을 한 아이가 나를 보자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아이는 자신을 배웅하는 사무실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게로 왔다. 나를 바라보며 인사하는 사무실 직원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 나도 인사를 했다.
- Goodbye. See you tomorrow.
학교 앞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 엄마, 우리 좀 걸을까요?
둘째가 의외의 말을 했다. 내가 먼저 꺼내볼까 하던 말이었기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
- 그럴까?
일전에 근처에서 맛있게 먹은 젤라토 집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먹일까 하고 찾아보니 오픈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아침 9시에 아이를 데리고 갈만한 곳이, 안타깝게도 학교 주변에는 없었다. 생각을 바꿨다.
- 우리 전철 타고 갈까? 십분 정도 걸으면 한 번에 가는 전철역이 나오거든. 어때?
- 좋아요.
아이가 웃으며 말하자 퉁퉁 부운 눈이 더 작아졌다. 학교를 벗어난 아이의 얼굴엔 인정하기 싫은 생기가 돌았다. 울지도 않았고 모처럼 내 말을 잘 듣고 다정한 태도로 나를 따랐다. 그 모습에 화가 났다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얼마 안 가 비탈이 심한 언덕길이 나왔다. 나는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언덕길을 오르기 전에 아이에게 일러두었다.
- 경사가 좀 있어서 힘들 거야.
- 괜찮아요.
아이와 나는 언덕길을 천천히 올랐다. 길을 오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허리가 꽤 앞으로 숙여졌다. 점점 숨도 찼다.
-엄마, 언덕길을 오를 때 힘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지 알아요?
- 아니.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설명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그럴 땐, 이렇게 지그재그 모양으로 이쪽으로 갔다가 다음엔 반대쪽으로 걷고 이런 식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엄마도 해봐요.
나도 아이를 따라 언덕길을 지그재그로 걸어 올라갔다.
- 어때요? 조금 덜 힘들죠?
- 그래, 저기 계단 있는 곳까지만 올라가면 그다음부터는 내려가는 길이니까 조금만 힘내.
- 알았어요. 내려가는 길은 쉬우니까.
- 그렇지.
나는 또 한 번 멈춰 서서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도 걸음을 멈추고 우리 앞에 있는 계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럼, 저기 계단까지만 올라가면 그다음엔 쉽겠네요.
- 응. 어쩌면 지금 우리가 이런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걸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품은 말들이 입 밖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아이가 이 말을 이해할까 싶은 생각과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이가 들어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미 뱉은 말이었기에 어찌하지도 못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아이가 진진한 목소리로 답했다.
- 그러네요.
순간 나는 아이가 내 말을 이해하고 대답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꽤나 진지한 얼굴이었기에 아이가 내 말을 이해할 만큼 성장한 것이라고 믿으며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오늘처럼 조퇴를 하는 건, 저 아래 출발지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아.
- 으아악, 그건 안 돼! 그럼, 계속 힘들잖아요.
아이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평소처럼 약간의 장난을 섞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내 입 사이로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 그렇지. 그럼, 언덕 끝까지 올라가는 것도 더 오래 걸릴 거고
- 악, 그건 진짜 싫은데.
- 싫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같은 반 친구들이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들을 들었다며 말해주었다.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이는 생각하더니 자기도 빨리 오르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편한 길을 걸을 수 있으니까 라며. 나는 빨리 갈 필요는 없다고. 올라가면서 찬찬히 살피면서 귀를 잘 열고 여러 소리를 듣고 보며 성실히 걸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가 갑자기 반색하며 진짜 듣기만 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네가 좋아하는 말하기를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잘 들으라고 했다. 아이가 그건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선생님 영어가 조금 들렸다고 했다. 친구의 영어도 조금 들린 것 같다고 했다.
- 어려운 길을 지나면 그다음엔 쉬워지는구나.
어떤 생각을 정리했는지 아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언덕길을 지나 내리막 길에서 아이는 더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는 퉁퉁 부은 눈으로 많이 웃었고 내가 힘든 지 걱정해 주었다.
그렇게 전철역에 도착을 했고 아침을 여는 가게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식탁에 앉아 아침 6시에 싼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나는 아이에게 아파서 왔으니 쉬라고 했다.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는 퍽 서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플 때는 쉬는 게 최고니까 누워서 쉬라고 말을 덧붙였다. 아이는 알았다고 했다. 금방 심심한 얼굴이 되어 소파에 앉은 아이를 두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욕실을 닦았다.
그렇게 두 어시간이 지나자 집안 일 하는 내 뒤를 따라다니던 아이가 말했다.
- 차라리 학교에 있을 걸.
아이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런 아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면서도 일면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바로 반박을 했다.
- 네가 아프다고 해서 집에 온 거잖아.
내 말이 제대로 맺어지기도 전에 아이가 큰 소리로 답했다.
- 아니에요! 나는 양호실에서 잠깐만 쉬려고 했어요. 아트 클래스 듣고 싶었는데. 엄마 때문에 집에 온 거예요.
아침 일들이 아주 먼 옛날의 일처럼 지나갔다. 아이는 불만 가득한 태도로 손에 닿는 모든 것을 거칠게 다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있고 싶었다는 말이, 듣고 싶은 수업이 있었다는 것이 안심이 되었다.
아름다웠다 어지러웠다 정신없었던
등교 2주 차 월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