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보인 것은 아이의 힘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상하지 않아, 전혀. 둘째가 손에 든 노트를 바라보다 내 얼굴을 확인했다. 아이는 한 번 더,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되물었다. 나는 또 한 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등교 3주 차, 아이들은 아침마다 힘들어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밥도 먹었다. 하지만 김치나 고춧가루가 든 음식은 아침에 먹지 않으려고 했다. 좋아하는 과일, 요구르트도 아침엔 먹지 않았다. 탈이 날 것 같은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침 밥상은 점점 간단해지고 내 마음과는 달리 초라해졌다. 아이들이 적응하려고 애를 쓰는데 일조해야 했기 때문에 도시락 반찬도 되도록이면 자극적인 것은 피하게 됐다. 그렇게 점점 적응해가나 싶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목요일 오후, 하교하는 둘째 얼굴이 울상이었다. 덩달아 내 가슴도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내려앉으려는 것을 부여잡았다. 애써 웃으며 둘째를 맞았다. 나를 보고도 둘째는 말없이 지나쳐갔다. 바쁜 걸음으로 둘째를 따라 학교를 벗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둘째가 뭐라고 답은 하는데 길거리 소음 탓인지 당최 들리질 않았다. 재차 물으니 둘째는 짜증을 냈다. 둘째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나는 두려워 움츠려 들었다. 누군가 둘째의 모습을 보고 나쁘게 생각하진 않을까 두려워했다. 낯선 곳에서 둘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곁에 있을수록 더욱.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남의 집 아이를 두고는 잘만 생각하면서 내 자식은 그렇게 유연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는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니에요, 아무도 묻지 않는데 그렇게 외치고만 싶었다.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랬다, 그때는. 나는 둘째에게 하려던 말을 거두고 침묵했다. 우리는 조용히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집에 들어서자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어졌다. 아이도 그런 것 같았다. 그제야 제 기분이 왜 엉망인지 입을 열었다. 내일 해야 하는 발표 주제를 아직 못 정했다는 것이었다. 불안이 아이를 예민하게 만든 거였다. 매주 금요일마다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한다고 했다. 주제는 자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면 되는 거였다. 2주 차에 발표에 대해서 듣고 온 둘째는 여러 주제를 떠올렸다. 레고, 책, 게임 등등. 하지만 그 사이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보면서 불안함이 더 커진 것인지 좀처럼 결정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발표가 이틀 남았다는, 압박감이 아이를 불편하게 했고 그 불편함이 짜증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졌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 것도 받지 않았다. 받지 않는 이유도 다양했다.
"달고나는 어때?"
나도 지쳐갈 즈음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내뱉은 것이 달고나였다.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이런 마음이 있긴 했다. 국제 학교니 혹시 한국을 알리는 행사가 있다면 달고나를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 말이다. 그렇게 챙겨 온 달고나 기구들이 생각나서 한 말이었다. 둘째가 흥미를 보였다.
"달고나도 만들어서 들고 가서 보여주면 재미있지 않을까?"
내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으로 나는 달밤에 달고나를 구웠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재료가 부실한 까닭인지, 아니 기술 부족이 제일 컸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달고나는 실패를 거듭했다. 그럴수록 원고를 준비하던 둘째 얼굴도, 내가 태운 달고나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될 때까지 달고나를 굽고 둘째는 발표를 연습했다. 외우기는 힘들면 노트를 들고 가서 읽자는 내 말에 둘째는 강한 의심을 품었다. 그렇게 해도 되느냐로 시작한 질문은 이상해 보일 것 같다고 끝났다. 나는 지난 2주 동안 있었던 반 친구들의 발표에 대해서 물었다. 아이 말로는 원고를 들고 나와 읽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그렇지만, 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지. 우리는 아직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노트를 읽고 정확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
둘째는 고심 끝에 노트를 찢었다. 아무래도 노트를 들고 서는 건 안 될 것 같다면서 한 행동이었다. 무엇이 차이인가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 마음이 편하다면야 안 될 게 무엇인가. 노트를 종이 한 장으로 가볍게 바꾸는 것으로 아이 마음도 가벼워진다면야.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이는 우리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발표 연습을 했다. 우리는 박수를 쳤고 둘째는 쑥스러운 듯 웃다가 박수를 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머쓱해져선 손뼉 치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달고나를 구웠다. 괜찮은 상태가 될 때까지 말이다.
드디어 3주 차 금요일 아침, 아이 가방에 뽁뽁이로 감싼 달고나를 넣었다. 본래는 반 아이들 수만큼 만들겠노라 했지만 내 기술력으로는 턱도 없었다. 남 앞에 내보일 수 있는 것은 고작 3개뿐이었다. 소중하게 감싸서 아이 가방에 넣고는 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다. 아이는 축 처진 어깨로 등교를 했다.
학교 앞마당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다. 평소와 다르게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둘째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나왔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발끝을 들어 아이 얼굴을 살폈다. 아이 얼굴이 밝았다. 앞으로 나아가 아이를 맞이했다. 발표는 잘 마쳤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을 감싼 만족감이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실수는 조금 했지만 손에 든 종이를 끝까지 잘 읽었다고 했다. 발표 끝에는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데 자신이 답을 잘 못하자 담임 선생님이 도와주었다고 했다. 담임이 달고나 이미지를 찾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고 했다. 아이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부드러운 음성으로 담임에 대한 것을 내게 들려주었다. 조금 신이 나 보였다.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는 만족감이 그새 아이를 키운 것 같았다. 아이와 나란히 걸으면서 나도 기대에 차 물었다.
"달고나는? 애들이 좋아했어?"
둘째가 내 질문에,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냐는 얼굴로 답했다.
"아니. 학교 도착했을 때 다 깨져 있어서 보여주지도 못했어. 그래서 선생님이 컴퓨터로 보여준 거예요."
그렇구나, 나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조금 분했다. 이러려고 달고나를 그렇게 열심히 만든 게 아닌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안심이 됐다. 내 걱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아이의 일을 내가 나서서 한 그것들이, 결국 아이가 발표를 하는 데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말이다. 아이는 아이만의 방법으로, 학교 안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받으며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날 우리는 그 넘치는 만족감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이래 처음으로 웃음이 있는 저녁 시식사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