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전환
지난 3월은 연재 글을 올리지 못했다.
처음엔 한국에서 온 손님 때문이었는데, 한 번을 놓치고 나자 그다음에도 쉬운 변명들이 생겨나 연재를 밀리고 말았다. 그리고 글을 다시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이런 일기 같은 글을 누가 읽어?"
내 글을 읽은 신랑이 한 말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신랑의 말에 아니야, 하고 반박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내 글을 다시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일기 같은 글이란 무엇일까, 정말 그리하여 조회수도, 구독자도 낮았던 것일까.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내 글은 찾아 읽고 싶은 글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찾아 읽고 싶은 글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러 이유 중에 내게 잘 맞는 것을 찾아 글에 녹여내는 것은 내 능력일 것이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여기서조차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나인데,라는 변명을 삐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독자 중 한 명인 신랑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직 명확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으므로 당분간은 삐걱이고 삐죽이며 때로는 어느 독자의 솔직한 리뷰에 스스로를 반성하며 방향을 찾아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들어온 브런치 연재가 10회 차임을 알려주었다. 연재 10화 차라니!
10화 특집이라고 말하며 방향 전환을 해보는 시도로 일본 이주 준비 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때는 2023년 3월, 신랑이 도쿄 주재원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개를 갸웃 거리는 내게, 하지만 안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나는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랑은 또 하지만 이라는 말로 입을 열며, 발령이 날 수도 있으니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만약 발령이 난다면 10월엔 도쿄로 나가게 될 거라고 했다, 발령이 난다면. 신랑이 내뱉는 말은 애매한 말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애매한 말에 기대를 품은 나는, 그 뒤로 도쿄의 학교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 학교를 검색했다. 아이들에게 그것이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교육청 산하에 있는 학교라는 것은 학부모인 내게도 안정감을 줬다. 한국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교실 사진을 보았다. 아이들이 이 학교에 가면 교복을 입겠구나, 하며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 해외에 나가는 건 어떻게 보면 기회인데, 도쿄에서 한국 학교를 보내려고?
하지만 신랑은 생각이 달랐다. 만약 주재원으로 나가게 된다면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내 선택지에는 없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영어 공부라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손을 놓은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또, 신랑의 말에 혹해서 도쿄 내 국제학교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과 동시에 높은 벽을 느꼈다.
국제학교 지원 조건은, 학교 별로 미세한 차이가 있긴 했으나 대부분이 영어를 사용하는 교육기관에서 1년 이상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색을 멈추지 않았다. 주재원이 꼭 된다는 보장이 없어 마음이 가벼웠던 탓인지, 이 학교는 이런 조건이고 저 학교는 저런 조건을 가지고 있구나, 하며 검색을 이어갔다. 검색 끝에 생긴 어떤 애매한 사실과 애매한 불안이 아이들 영어 공부에 불을 지폈다.
매일 영어를 쓴다면, 이라는 미래를 설정하자 아이들이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는가, 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학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한 문제를 해결해 줄 만한 영어 학원은 집 주변에 없었다. 대부분이 입시를 위한 영어 학원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법을 공부하고 문제 풀이를 하는 식의 영어 공부는 필요 없었다.
외국인과 만났을 때 크게 낯설어하지 않고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입을 열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처럼 그런 학원을 찾지 못해 과외를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때였다.
- 여기 한 번 가봐요.
내 고민을 들은 지인이 영어 학원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입시용 영어 학습을 하는 곳이 아니며 원어민이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학교 가듯 매일 간다는 것도 그때의 나로서는 좋게 보였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 아, 그런데 안 될지도 모르겠어요.
반색하는 내 앞에서 지인은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자신이 한 말을 주워 담고 싶어 했다. 이유는 큰 아이 때문이었다. 당시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그 학원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받는 곳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비웠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학원을 검색해 봤다. 검색할수록 그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영어 학습에 가까워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또 한 번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원에 전화를 걸어 우리의 사정을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선생님은 난처한 듯 말을 길게 끌었다. 역시 안 되는구나, 싶어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일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 주시겠어요?
* 오랫동안 글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