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직 울고 있습니다."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 침대에 막 누웠을 때였다. 모르는 척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이불 밖으로 내민 발을 다시 이불 안으로 넣었다. 천장만 바라보았다. 마치 그런 나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커졌다. 가만히 누워 있지 말고 이불을 박차고 나와, 흐느껴 우는 나를 봐!,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신랑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러니 그 순간, 움직이지 않는 나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천장 중앙에 위치한 등의 위치를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발아래 베란다가 보이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주한 건물의 창들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밝은 빛을 내는 창문 수를 하나, 둘 셌다. 그 사이 흐느낌이 분명한 울음소리로 변했다. 나는 이불을 걷고 발을 움직여 방바닥을 디뎠다.
첫 번째 주말은 평온했다. 금요일 오후 담임에게서 따뜻한 지도의 말을 들은 큰 아이는 제법 안정이 된 것 같았다. 앞으로 한 달은 숙제나 공부보다 학교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말은, 아이가 꽉 쥐고 있던 부담감을 놓게 한 것 같았다. 아이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주말을 맞이했다. 나도 작은 아이도 덩달아 평온한 주말을 맞았다. 신랑은 출근 한 주말. 우리 셋은, 같이 동네를 거닐고 우리가 고른 식당에 갔고 손가락을 이용한 주문까지 무사히 마쳤다. 주문을 마친 우리는 서로를 보며 흡족한 웃음을 주고받기도 했다. 일요일엔 아이들 바람대로 집에서 천천히 쉬면서 월요일 준비를 했다.
영어가 서툰 나는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쥐고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미국 드라마를 고르고 영어 자막을 설정했다. 아이들이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꿋꿋하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아이들은 낮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내가 고른 미국 드라마를 시청했다. 한 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둘째가 지친 얼굴로 한글 자막을 보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둘째의 표정에 항복했다. 그래, 그렇게 해. 한글 자막으로 한 편을 더 본 둘째가 또다시 지친 얼굴로 날 찾아와 물었다.
- 엄마, 우리가 보고 싶은 거 보면 안 돼요?
둘째 뒤로 간절한 눈빛을 쏘는 첫째도 보였기에 나는 그러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내 생기를 되찾고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아이들은 저들이 원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좋아하고 낄낄 웃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다. 큰 아이는 늘 그렇듯이 몇 번을 반복해서 학교 가방을 확인했다. 가방을 다 쌌다던 둘째도 큰 아이를 보더니 다시 들어가 가방을 확인했다.
내일은 학교에 가는 날이니 일찍 눕자는 말이, 그렇게 슬픈 말인지 몰랐다. 두 아이는 금세 생기를 잃고 시든 얼굴로 밤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방에 들어가 누웠다. 나는 주방 문을 닫고 도시락 준비를 했다.
늦은 밤, 주방 불을 끄고 복도로 나갔다. 불을 켠 채로 복도로 나갔을 때 무언가 마주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복도를 조심조심 걸었다. 그렇게 안방 침대에 누워 일주일이 잘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찰나였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건.
큰 아이일 거라 생각했는데 복도에 발을 딛는 순간, 둘째 아이의 울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주일 동안 큰 아이만 신경 쓴 것에 대한 항의라도 하듯, 아무 문제없어 보였던 둘째가 울고 있었다.
- 학교 가는 게 무서워요.
둘째가 뜻밖의 말을 내뱉으며 울었다. 나는 아이를 안아주고 등을 다독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지난주 큰 아이처럼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슬픈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던 둘째는 몸을 획 돌려 나를 등졌다. 등을 다독이는 내 손을 몸을 강하게 움직여 밀쳐냈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나는 아이가 듣고 싶지 않은 말만 반복했다. 아이는 나를 노려보다 슬프게 울기를 반복하다 애원하듯이 부탁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를 냈고 나를 밀쳤다. 나는 그렇게 둘째 방에서 쫓겨났다.
등교하는 두 번째 월요일 아침. 퉁퉁 부은 눈의 둘째가 일어나면서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다. 식탁에 차려진 아침밥도 마다했다. 기운이 없는 얼굴로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냐고 했다. 신랑과 나는 아이를 살폈다. 둘째는 큰 아이가 먹던 정로환을 찾았다. 약이 필요할 정도로 아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약은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둘째는 또 울음을 터트렸고 우리는 아이를 달랬다. 큰 아이도 덩달아 울려고 했으나 외면했다. 신랑과 나는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몸이 아파 조퇴를 하더라도 일단 학교는 가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결론이었다. 결국 둘째는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신랑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나가고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다 노트북을 열었다. 둘째의 담임에게 메일을 썼다. 아이가 아침에 많이 울다 학교 갔다고 적으면서 학교에 가서도 몸 상태가 계속 좋지 않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둘째가 있는 곳엔 늘 웃음이 있었다. 둘째는 사람을 좋아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친구들을 웃기는데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에 올 때도 큰 아이가 울면, 둘째가 나서서 큰 아이를 달랬다.
- 친구 사귀는 게 걱정되면 내가 친구 사귀는 법을 알려줄까?
큰 아이가 서럽게 목소리를 높여도 둘째는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 사귀는 법을 알려주고 일본 생활이 얼마나 재미있을지를 상상해 말하곤 했다. 일본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내가 주문한 일본어 책을 학교에 가지고 가 친구들에게 일본어를 알려주고, 친구들의 이름을 일본어 가타카나로 적어주는 아이였다. 아이는 나와 함께 즐거운 일본 생활을 꿈꾸고 기대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이유로 우리 부부는 둘째를 걱정한 적이 없었다. 둘째는 늘 그렇듯이 낯선 곳에서도 잘 적응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고 꿈꾸던 일본 생활엔, 우는 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담임의 답신이 왔다.
“그는 아직도 울고 있습니다. 그는 배가 아프다며 계속 울었고 지금은 보건실에 가 있습니다. 상태가 계속 좋지 않다면 당신에게 연락이 갈 것입니다.”
나는 급히 모자를 찾아 썼다. 선크림을 바르려다 말고 양말을 신었다. 가방에 지갑 하나를 넣고 집을 나섰다. 둘째가 울고 있는 학교를 향해 걸었다.
- 계속 -